2019년 5월 18일: 한국분석심리학회 춘계학술대회 강연

2019년 5월 18일 한국분석심리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 “자해의 의미” 제하의 강연을 했습니다.

일 시 : 2019년 5월 18일 (토) 오후 1:00-오후 5:30
장 소 : 서울대학교병원 의생명연구원 강당

13:00 ~ 15:00
사례 1.
자해의 의미………………………….정찬승 (마음드림의원)
토 론……………………………………김성민 (월정분석심리학연구소)

15:00 ~ 15:20 coffee break

15:20 ~ 16:50
사례 2.
내담자의 죽음과 치료자- 애도와 개성화과정을 중심으로
발 표…………………………….김지연 (김지연 융 심리분석연구소)
토 론…………………………….이광자 (세림서울정신건강의학과의원)

16:50 ~ 17:30
종합토론……………………………………….김진숙 (김진숙 심층심리연구소)

내향형 의사의 세계 참여

판단과 행동의 기준을 주체에 두는 사람을 내향형으로, 객체에 두는 사람을 외향형으로 분류할 때 나는 내향형에 해당할 것이다. 학교와 병원에 적응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습득해야 하는 외적 적응을 제외하고는 내면세계에 대한 관심에 머물러온 데다가, 외적 활동을 할 때마다 큰 피로감과 어색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나를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로 성장시켜준 스승과 학회에 대한 봉사의 마음으로 학회 실무에 꾸준히 참여한 것이 그나마 내가 해온 외향적 활동이라 할만하다.

정신건강의학과 클리닉을 운영하고 분석과 진료를 전담하는 개업의로서 여러 가지 사회적 역할에 참여하는 것은 매우 큰 부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부담을 짊어진 이유는 어떤 의무감 때문이다. 나는 정신건강의학과 수련을 마칠 즈음 의사로서의 역할을 크게 네 가지 영역, 즉 진료, 연구, 교육, 봉사로 분류하기로 정했다. 내 나름의 외적 활동의 네 개의 축인 것이다. 이 가운데 철저히 클리닉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진료 한 가지며, 그 외의 영역은 모두 진료실을 넘나들며 행해진다. 전공의 시절부터 공부를 지속해온 분석심리학은 환자와 그 질병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전체정신, 즉 의식과 무의식 전체를 포괄하며 심원(深遠)한 원형의 세계를 탐구한다. 또한 질병관은 물론이요 인간의 세계관(Weltanschauung)을 중시하기에 필연적으로 진료실 너머의 넓은 세계를 관심의 대상으로 삼는다.

나에게 본격적인 사회 참여의 계기가 된 사건은 2014년에 벌어진 저 비극적인 세월호 참사다. 당시 한국 사회는 감당하기 힘든 충격과 비탄에 깊이 침잠해 들어갔다. 생존자와 유가족, 그리고 시민들의 정신건강을 지키기 위한 대응이 절실했다. 나는 대한신경정신의학회 홍보기획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었는데, 홍보기획이사인 이동우 선생님이 나에게 전화를 걸어 ‘학회가 해야 할 역할을 정리해달라’는 부탁을 하셨다. 나는 재난정신건강위원회 설치가 필요하다는 제안서를 제출했고, 그것이 학회 테스크포스에서 통과되어 체계화된 재난 대응의 기반이 되었다. 연이어 학회 성명서와 보도자료 발표, 재난정신건강위원회 설치, 안산시 통합재난심리지원단 운영에 참여했다. 피해자를 돕고자 많은 의사들이 자원봉사자로 나섰으나 전문가를 교육할 자료가 미비한 것을 알게 되어 교육위원회에 들어가서 의사를 위한 ‘재난 이후 개입 모델’ 교육 자료를 제작하여 보급했다. 세월호 사고 후 국민 정신건강 안내서 제작에도 참여했다. 국가 차원의 재난정신건강 대응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일본과 미국 등 해외 사례 연구를 시행하고 보고서와 논문으로 발표했다.

2015년에는 감염병 메르스의 국내 유입으로 인해 시민들이 공포와 불안에 압도되었을 때, 재난정신건강위원회 동료들과 함께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와 공동으로 ‘감염병 스트레스에 대한 정신건강지침’을 제작했다. 국가 서비스의 부재를 절실히 느낀 동료 연구자들은 보건복지부 정신건강기술개발사업단의 연구과제로 ‘재난 유형과 개입 시기에 따른 재난정신건강지원서비스 모형 및 업무수행전략 개발’을 추진하게 됐고, 나는 ‘재난정신건강지원 정보콘텐츠 및 플랫폼 개발’에 연구원으로 참여하여 각종 재난에 대비하고자 시민을 위한 재난정신건강지침을 만들었다. 2017년 불시에 닥친 포항 지진에서 피해자는 물론이요 불안에 떠는 시민들, 현장에 투입된 지원자들에게 ‘재난에서 마음 건강 지키기’ 책자를 보급하여 안정을 회복하는 데 기여할 수 있었다.

이런 경험이 계기가 되어 일본국립정신신경연구센터의 트라우마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요시하루 킴 선생의 초청을 받아 2016년 세계보건기구 서태평양지부(World Health Organization Western Pacific Regional Office, WHO WPRO)에서 열린 전문가 미팅에 한국 대표로 참석하여 세계의 전문가들과 함께 재난정신건강 분야의 정보와 경험을 공유했다. 같은 해 여름에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의 가장 큰 피해지역인 후쿠시마현과 미야기현의 ‘마음의 케어 센터’를 현지 방문하여 한일 전문가 워크숍을 진행하고 일본의 훌륭한 전문가들과 우의를 다졌다. 풍부한 인적, 학술적 교류는 이 분야를 발전시키는 데 큰 밑거름이 되었다.

장황하게 열거한 이런 활동들은 내 개인의 영달을 추구하지 않은 것이기에 전반적으로 봉사의 영역에 들어가며, 경우에 따라 연구와 교육에도 해당할 것이다. 한때는 대학교수가 되어 교육에 매진하고 싶다는 소망이 강했으나, 기회가 주어지지 않거나 주어진 제안을 부득이하게 사양하고 나서 클리닉을 개원한 뒤로는 연구와 교육의 영역에서 멀어진다는 아쉬움이 컸다. 그러나, 되돌아보니 만약 대학이나 대형 병원에 소속되어 있었다면 과연 이렇게 자유로이 활동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아마도 각종 행정적 업무와 복잡한 인간관계들에 치어서 좁은 울타리 안에서 소극적 자세로 머물렀을 가능성이 크다. 개원을 하니 요식적으로 만들어내야 할 연구업적에 대한 부담도, 불편한 시선으로 견제할 동료도 없으니 순수한 마음으로 본질을 추구할 수 있어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왕성해진 사회적 활동 때문인지 각종 방송에서 출연 요청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동료들이 보기에 나는 봉사만 했지 달리 얻은 이득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방송 기회가 있으면 나를 추천해주기도 했다. 세월호 참사 대응 상황 보고를 시작으로 정신건강에 대한 대담 등에 출연하는 일이 많아졌다. 흥미를 위해 제작하는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출연 제의가 들어왔지만, 이것은 모두 거절했다. 심지어는 훌륭하다고 정평이 난 다큐멘터리 제작팀에서 ‘분석을 통한 치유’에 대한 프로그램을 제작한다며 찾아와서 분석하는 과정을 영상에 담고 싶다고 하여 큰 고민을 한 적이 있다. 나는 당시 분석가도 아닌 수련생에 불과한 데다가 내밀한 분석 과정을 연출을 가미하여 흥미위주로 방송한다는 것이 무척 못마땅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명성을 알릴 수 있는 솔깃한 유혹이었다. 그때 나는 중요한 꿈을 꾸었다.

나는 학회를 앞두고 커다란 고급 양복점에 갔다. 아침 일찍 가서 정장 세탁을 맡겼다. 젊고 키가 큰 신입 점원에게 ‘이거 오늘 학회에 입고 가야 하는데, 세탁이 되겠느냐? 20분밖에 시간이 없다.’고 물었다. 그러자 점원은 자신만만하게 ‘가능하다.’고 했다. 20분 후 나는 맡긴 정장을 찾아서 입었다. 그런데, 보면 볼수록 이상했다. 정장은 주름이 잔뜩 지고 후줄근하게 늘어져 있었다. 소매에는 때와 얼룩이 더 심해졌다. 나는 점원을 찾아서 어찌 된 일인지 물었다. 그 점원은 우물쭈물 대답하지 않다가 내가 다그쳐 묻자 그제야 대답을 했다. 세탁하지도 않았을뿐더러 내 양복으로 매장 바닥의 물기를 닦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대답하는 태도가 무심하고 뻔뻔하기까지 했다. 나는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꾹 참으며 사장을 만나겠다고 했다. 마침 사장이 출근하여 아침 회의를 하려고 했다. 그 매장은 대단히 컸기 때문에 직원도 많았다. 나는 매장 한쪽에 마련된 아주 긴 테이블에서 회의를 시작하려던 사장 앞에 서서 그 신입 점원의 소행을 말했다. 사장은 조금 당황하며 확인을 해보겠다고 했다. 곧 일의 자초지종을 알게 된 사장이 사과를 하는데, 뭔가 충분치 못했다. 나는 입고 나갈 옷도 아직 없고, 이미 학회는 시작해 있었다. 나는 여전히 그 후줄근한 정장을 걸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나는 머리를 얻어맞은 듯한 충격과 함께 잠을 깼다. 과유불급(過猶不及). 나는 정장으로 표현된 외적 인격, 즉 페르조나에 집착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더 이상 번듯하게 보이려고 노력해서는 안된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 뒤로 한동안 모든 방송 출연 제안을 거절했다. 심리 서적을 내자는 도서기획자의 제안도 여러 차례 받았지만, 역시 모두 거절했다. 설익은 나의 세계관이 활자화되어 사람들에게 잘못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미성숙한 글은 가끔 숨겨진 독기를 품고 있어서 달콤한 위로의 말로 위장하여 읽는 이의 마음을 병들게 한다. 방송과 책으로 이름을 알리고 활발히 활동하면서도 초심을 지키며 중심을 잃지 않는 동료들이 많이 있지만, 간혹 자신의 명성에 도취하여 무너져가는 이들도 있다. 나는 내 명성 추구가 나와 남을 해치는 것을 원치 않는다.

나는 원래의 내향적 태도로 돌아와서 내 앞에 마주 앉은 한 명의 개인과 함께 무의식을 탐구하고 자기 자신의 고유한 개성을 발견해나가는 작업에 정진하기로 다짐했다. 병원 안 아담한 공간에 상징 연구에 필요한 책들을 모아서 ‘글이 익는 솥’이라는 의미로 ‘문정(文鼎)도서관’이라 이름 짓고 피분석자의 꿈에 나타난 무의식의 재난 원형상의 기원을 파고들었다. 한국융연구원에서 이부영 원장님의 지도를 받으며 동학(同學)인 김지연 선생님, 이주현 선생님과 함께 재난심리연구모임을 만들어 정기적으로 재난의 의미를 탐구한 것이 큰 도움이 됐다. 그렇게 해서 2017년 여름 한국융연구원 분석가 수련과정 수료 논문 ‘재난과 대처양식에 대한 분석심리학적 연구: 한국의 전통문화를 중심으로’를 완성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나는 인간의 정신, 그중에서도 무의식에 대한 진지한 접근이 사회적 이슈를 주제로 열리는 강연회나 토론회에서 여러 다른 외향적 접근을 보상해주고 훌륭한 균형을 제공해준다는 것을 체험했다. 2016년 ‘갑질’이 큰 사회적 문제가 되었을 때 보건복지부 중앙정신보건사업지원단에서 이를 두고 정신건강정책포럼을 열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갑 안의 을, 을 안의 갑, 즉 갑과 을의 상호 그림자 투사와 권력 콤플렉스에 대해 지적하고 분석심리학적 견지에서 해법을 제시했다. 논문으로 펴낼 정도의 대단한 수준은 아니지만, 포럼 자료집의 원고가 국내외 여러 매체의 요청을 받아 인용되고 있으니 개인의 정신세계를 대상으로 삼는 분석심리학이 사회 현상의 심층적 해석에도 적용됨을 보여줬다고 할 수 있겠다.

2017년에는 정신건강의학과 정신치료 수가 개선 작업에 참여하여 한국분석심리학회 회원들의 지혜를 모아 정신치료 발전을 위한 수가 개선안을 제출했으며,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추계학술대회에서 열린 ‘상담을 원하는 국민이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에게 질 높은 상담을 받게 하기 위한 정책’ 토론회에서 정신치료 분야의 연자로 초빙되어 ‘의료의 영역을 넘어서는 정신치료의 세계: 인격의 성숙’ 제하의 강연을 했다. 당시 보건복지부 측, 학회 측, 개업의 측 연자들은 모두 현실적 수가 문제에 집중해서 개선안을 제시했지만, 나는 정신치료의 본질에 대해서 강조하여 내적 균형을 제시하고자 노력하여 큰 호응을 얻었고 이어진 라운드테이블 미팅에서도 밀도 높은 토론이 가능해졌다. 학회와 의사회의 보험위원회의 노고로 수가 개선 작업은 국민과 의사를 위해 값진 결실을 보았다. 실무를 지휘했던 분에게 전해 듣기로는, 보건복지부 측 인사가 토론회의 강연을 들으며 정신치료의 본질에 대해 인지하고 오히려 더욱 적극적으로 챙겨서 정신분석 수가의 개선이 힘을 얻었다고 한다. 외적인 협상과 대응이 물론 중요하지만, 한 개인과의 철저한 분석 작업을 전달하고자 노력한 것이 나름의 역할을 해서 큰 보람을 느꼈다.

2017년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추계학술대회 정책 토론회를 마치고

2018년부터는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신보건위원회 상임위원으로 선임되어 헌신적이고 열정적인 동료들과 함께 정신건강정책 수립과 보완에 참여 중이다. 특히 한국의 높은 자살률에 대한 대책이 절실한 상황에서 정부 당국자들이 시민의 정신건강증진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하여 정신보건위원회는 전문가적인 견해와 대책을 제시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세계에 참여하지 않고 닫힌 공간 안에 오래 머물다 보면 작은 방 안의 현자(賢者) 노릇에 도취할 수 있다. 불편하고 낯설어도 현실의 사람들과 섞이고 영향을 주고받는 것은 내향적 인간에게 현실적인 균형감을 찾아준다. 클리닉 밖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연구, 교육, 봉사의 세계 참여는 다시 내 진료실 안으로 돌아와서 나와 마주 앉은 한 개인을 넓고 깊게 공감하는 데 큰 바탕을 제공해준다. 나는 이런 외적 활동들을 행함에 있어서 교수, 봉직의, 개업의로 직역을 구분하는 것은 이제 무의미하다고 본다. 내 페르조나는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이자 융학파 분석가이며, 이 모든 세계 참여 활동은 나의 의업(醫業)을 심화, 확장시키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카를 구스타프 융은 철저히 자기 자신이 될 것을 강조하면서도 이것은 사회로부터 분리되거나 고립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온전한 인격을 가진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더욱 훌륭히 참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독립된 개별적 존재이면서도 서로 연결된 집단의 일원이다. 내적 세계와 외적 세계 어느 쪽도 소홀히 할 수 없다. 우리는 그 양쪽을 가진 전체로서의 인간이기 때문이다.

  • 2018년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춘계학술대회 워크샵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의 진료실을 넘어선 정신건강 역량강화를 위한 워크샵”에서 패널토론으로 발표한 내용입니다.
  • 한국융연구원 회보 길(2018년 봄호)에 기고한 글의 일부를 수정했습니다.
  • 후배 의사들의 사회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쓴 글입니다.

글 _ 정찬승 (융 학파 분석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의학박사)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신보건위원회 상임위원
대한신경정신의학회·대한정신건강재단 재난정신건강위원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 이사
보건복지부 중앙정신보건사업지원단 재난정신건강정보센터 연구원
울산대학교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외래교수
마음드림의원 원장
http://www.maumdream.com

2018년 2월 2일: 한국분석심리학회 홈페이지 개편

한국분석심리학회 창립 40주년을 맞이하여 홈페이지를 개편했습니다.

누구나 모든 게시물과 자료를 볼 수 있도록 공개했으며, 홈페이지 회원 가입 절차는 폐지했습니다.

앞으로 학술지 자료를 업로드하고 학회의 역사 자료를 보완할 예정입니다.

공지사항 코너에는 한국분석심리학회, 한국융연구원, 한국융분석가협회에서 주관하는 행사와 회원에게 반드시 알려야 하는 중요 사항을 게시하겠습니다.

분석심리학 코너에는 분석심리학의 기초 개념과 핵심을 이루는 내용을 학술대회 초록을 중심으로 게시하겠습니다.

에세이 코너에는 한국융연구원의 뉴스레터 ‘길’지에 게재된 회원의 에세이를 게시하겠습니다.

한국분석심리학회 홈페이지가 인터넷의 바다에서 분석심리학의 기본을 담은 배가 되기를 바랍니다.

– 한국분석심리학회 홍보이사 정찬승

나의 분석심리학 입문기

의과대학 시절 처음 분석심리학 이론을 접할 때는 그리 큰 흥미를 갖지 못했다. 하지만, 병원 실습 기간 중에 분석심리학회의 주최로 서울아산병원에서 열린 기초강좌에 참석하여 큰 충격을 받았다. 특히 이부영 선생님과 이죽내 선생님의 강의가 지금도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어떤 충격이었을까? 이전에는 들어보지 못한 인간의 정신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이 있었다. 내가 어렴풋이 느껴오던 무언가와 일치되는 느낌이 들었다. 정체되어 있던 마음이 활력을 얻게 되었고, 분석심리학에 대한 매력을 느꼈다. 이 모든 느낌은 젊은 시절의 회상이지만, 그 당시의 지적 흥분과 고양된 감정의 경험만큼은 지금도 확실히 남아 있다. 게다가 정신과 실습이 시작되고 보니 당시 주임교수로 계시던 연병길 선생님께서 분석심리학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지고 제자들을 가르치고 계셨다. 마음의 구조를 멋진 그림으로 그려서 알려주시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당시에는 ‘정신과 의사라면 분석심리학은 기본으로 알고 있구나.’ 하는 오해까지 하게 되었다.

여러 가지 방식이 있겠지만, 내가 수련을 받은 병원에서는 정신과 전공의가 되면 처음에는 정신분열병이나 양극성 정동장애에 해당하는 환자의 진료를 맡고 배우기 시작한다. 그런데, 수련의로서 첫해가 끝나갈 무렵 담당하게 된 환자는 약물치료보다도 집중적인 정신치료를 필요로 했다. 나는 자신이 없었다. 그런 내 심정을 알아보신 연병길 선생님께서 직접 정신치료 지도를 해줄 테니 열심히 해보라고 말씀해주셨다. 진지하게 정신치료에 임했고, 환자의 꿈과 연상도 수집했다. 열정은 높았지만, 실수투성이인 시간들이었다. 그런데, 놀라운 사건은 정신치료 지도 시간에 일어났다. 선생님과 토론을 하다 보니 내가 그토록 곤란함을 느끼고 어찌할 바를 모르던 환자의 현실의 문제와 꿈이 의미 있는 맥락으로 이해되기 시작했다. 요즘도 학회나 공개강좌 때 자주 나오는 질문 중 하나이지만, 그 당시에도 분석심리학이 임상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적용되는지가 모호했다. 하지만, 이해할 수 없었던 환자의 꿈속에 그림자와 아니무스들이 나타나는 것을 보고 어렴풋이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그에 더해 치료자의 자세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다. 환자의 정신치료에 대한 지도이면서도 자신의 치료자로서의 자세와 인간의 정신과 고통에 대한 자세를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후에도 여러 환자들의 정신치료를 지속하는 가운데, 분석심리학적 접근이 결코 모호한 것이 아니라 임상 실제에서 나타나는 정신현상에 대한 경험적인 학문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분석심리학파에서는 치료자 자신이 피분석자로서의 경험을 쌓아야 함을 강조한다. 오랜 기간 철저한 수련 없이 꿈을 해석하는 것을 심각하게 경계하고 있다. 끝을 알 수 없는 심오한 무의식에 대한 경험과 수련이 없는 상태에서의 섣부른 해석은 잘못된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고, 잘못된 해석은 환자나 치료자에게 오히려 해를 끼치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환자에게 꿈의 해석을 해주지 않아도 깊은 관심을 보이니 꿈속에 나타나는 상들이 변화되고 정신적 통합으로의 방향을 향해가며, 그러한 변화 중에 환자의 증상도 호전되는 것을 직접 경험한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한국융연구원에서 열린 전공의 교육 워크숍에서 케이스를 발표하며 한오수 선생님의 지도를 받기도 했다. 그래도 여전히 분석심리학은 어려운 학문이었다. 직접적인 경험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나 자신의 무의식을 체험하고 싶다는 소망이 강해져 연병길 선생님의 소개로 이부영 선생님으로부터 분석을 받기 시작했다. 그것은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사건이었다. 내 의식이 변화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내 개인적인 경험과 관련된 개인적 무의식과 더불어 내 경험과 연관을 지을 수 없고 오히려 인류의 보편적인 정신에 속하는 집단적 무의식을 체험하기 시작했다. 무의식은 나에게 크고 작은 메시지와 과제를 주었다. 내 의식의 일방성에 대한 무의식의 반응을 이제 의식의 자아가 통합해야 했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나타나 나를 괴롭히는 그림자들, 온갖 매혹과 알 수 없는 메시지를 던지는 아니마들, 어마어마한 충격으로 나타나는 여러 원형상들, ‘전체’의 감동을 전해주는 자기의 상(image)들은 분석을 통하지 않고는 결코 헤아릴 수 없는 무의식의 놀라운 메시지들이다.

무의식에 대한 경험이 가져온 내 삶의 변화는 수 없이 많고 크다. 허공을 맴돌며 부유하는 것 같던 나의 삶이 현실의 터전에 뿌리박고 설 수 있게 되었으며, 가족의 갈등이 해결되었고, 후손을 낳고 기르는 일을 기쁘게 받아들이게 되었고, 생기를 잃어가던 종교적인 태도에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완결과는 거리가 멀다. 여전히 진행되고 있고 새로운 변화를 기다리고 있는 과정의 일부다. 무엇보다도 내 삶이 페르조나의 허상들을 좇지 않고 중심을 향해갈 수 있는 동력을 얻게 되었다.

2004년에 분석을 받던 중에 강렬한 꿈을 꾸게 되었다.

“… 어떤 여자의 집이었다. 그녀는 아름답고 고상한 여자였지만, 얼마 전에 병으로 죽었다. 그리고, 그녀가 사랑했던 한 남자에게 그 집을 맡겼다. 그 남자는 하반신을 쓰지 못하는 불구였으며, 체구가 아주 컸고, 휠체어를 타고 다녔다. 집을 관리하며 지냈다. 슬픈 모습이었다. 그는 성실하게 집을 돌보았다. …

새벽녘의 바닷가, 절벽에 커다란 바위들이 있었고, 큰 파도가 바위를 때렸다. 적막하고 광활한 풍경이었으며, 파도 소리만 들렸다. 다리를 쓰지 못하는 큰 몸집의 사내가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 있었다. 사내는 큰 바위에 올라서서 그녀의 뒤에서 팔을 잡고 벌려주었다. 그녀는 팔을 벌리고 서 있다가 흰머리 독수리로 변했다. 새로운 태양이 떠오르며 그들을 비추었다. …”

샤머니즘에서 독수리는 영혼의 인도자로, 고통을 경험하고 쓰러진 샤먼을 저승으로 인도하고 영혼의 세계를 경험하도록 도와준 뒤 땅으로 데려온다. 그러한 과정을 거쳐 이승과 저승의 경험, 죽음과 재생을 통과한 한 명의 샤먼이 탄생하게 된다. 알 수 없는 여성과 독수리는 알 수 없는 세계인 무의식으로 인도해주는 무의식의 원형상이었다. 특히 독수리의 상징에 대한 확충을 하는 가운데, 명확한 한 마디로 환원할 수 없는,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큰 의미가 가슴으로 밀려들어 왔다. 이 꿈을 꾼 후 나는 무의식에 대한 더 깊은 탐구를 하고자 하는 마음이 들었고, 분석심리학 수련을 받기로 결심하게 되었다.

나는 몇 번인가 융을 만난 적이 있다. 우스갯소리 같지만, 꿈속에서 융을 만났다. 융은 엉뚱한 모습으로 산책을 하기도 하고, 열띤 논쟁으로 오히려 이중의 의미를 전달하기도 했다. 인상적이었던 꿈은 그가 동양인과 서양인 사이의 특수성과 인류의 보편성에 대해 어떤 학자와 논쟁하던 모습이다. 꿈속의 융은 종종 생각하고 고민할 거리들을 안겨 준다. 집단적 무의식에 대해, 또는 분석심리학 자체에 대해 근본을 돌아보도록 한다. 한 번은 융의 서재에서 당시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책을 보기도 했다. 나는 서가에 ‘홀로코스트 크리스마스’라는 제목의 책이 꽂혀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성탄절이 얼마 남지 않은 날, 잠에서 깨고 나서 그 의미를 알 수 없어 한참을 생각해야 했다. ‘온 땅의 축복인 예수님의 탄생일이 왜 끔찍한 홀로코스트와 나란히 적혀 있어야 하나?’ 그런 의문은 당시에 헤롯왕이 자행한 끔찍한 영아 살해가 떠오르며 해결되었다. 구원과 죽음의 양면성이 동시에 드러난 결정적인 장면이었다. 이 주제는 니콜라 푸생(Nicolas Poussin), 피테르 브뤼헐(Pieter Bruegel), 귀도 레니(Guido Reni) 등 여러 화가들에 의해서 작품으로 그려지기도 했다. 당시 활력을 잃고 있던 나의 영적 측면은 성탄에 대해, 구원에 대해 새로운 이해와 경험을 하게 되었다.

정신분석을 받고, 분석심리학을 공부하고, 꿈속에서 융을 만나도 항상 되새기게 되는 것은 ‘전체의 중요성’이다. 한쪽 방향만이 아닌 전체를 보는 것은 지금도 어렵고 앞으로도 어려울 것이다. 융의 저서가 아직 난해하게 느껴지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닌가 생각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석심리학에 집중하게 되는 것은 그것이 실제로 내 삶에 변화를 가져오고, 치료자로서의 나의 세계관을 넓고 깊게 만들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원고를 의뢰받고 나서 바로 수락한 것이 몹시 후회가 된다. 회보에 ‘융과 나’를 쓰기에는 나의 경험과 지식이 일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저 분석심리학과의 만남과 이후의 경험의 단편들을 가급적 평이하게 사실 그대로 전달하고자 노력했다. 어떤 독자는 분석을 받는 과정과 변화에 대해 너무 낭만적으로 기술하거나 미화한 것이 아닐까 오해할 수도 있겠다. 실제로는 과장되게 보일까 염려하여, 최대한 축소하고 자제해서 쓰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소중한 내적 경험을 공개하는 것에 대한 내향형의 두려움일 수도 있겠다. 덧붙여, 무슨 학파의 분석가로부터든 정신분석을 받은 사람들의 다수가 인생의 가장 소중한 시절로 그 시기를 회상한다는 사실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혹시라도 분석심리학이나 융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참고라도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하며 글을 마친다.

글쓴이: 정찬승

  • 2010년 한국융연구원의 소식지 ‘길’의 ‘융과 나’ 코너에 투고한 에세이를 일부 수정했습니다. 분석가 수련과정에서 작성한 조심스러우면서도 열정에 찬 글을 다시 읽으니 즐거운 추억에 잠기게 됩니다.  기록을 보존하기 위해 여기 남겨둡니다.

10월 21일: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추계학술대회 강연

2017년 10월 21일 토요일에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추계학술대회에서 “정신치료의 세계: 자기실현과 삶의 질 향상” 제하의 강연을 합니다.

다음은 초록 중 일부를 발췌한 내용입니다.

“… 융 학파의 견지에서 분석대상은 ‘병’이나 ‘환자’가 아닌 한 개체의 존재, ‘그 사람’Person이다. 분석은 우울증, 불안장애 등의 특정 질병의 치료를 목적으로 하기보다는 분석을 받는 사람의 자기실현을 통해 보다 성숙한 정신성을 획득하는 데 목적을 둔다. 이는 분석이 정신병리의 범주 안에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 분석을 받는 피분석자의 전체 인격을 대상으로 함을 의미한다. 분석은 의학적 범주에 속하는 ‘치료’를 넘어서 그 개인이 자신의 전체가 되도록 무의식을 의식에 동화시키는 작업이다. 이것은 전통적인 체계적 임상진단, 적응증, 금기, 예후 등의 의학적 접근방식을 버리고 철저히 분석대상 개인의 의식, 무의식에 맞추어 개별적으로 접근하는 과정이다. 실제로 신의 본질을 탐구하는 종교인, 창조성을 찾고자 하는 예술가, 삶의 의미를 고민하는 젊은이, 생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노인들이 분석을 받고 있으며, 이들을 환자로 지칭하거나 분석을 의료행위로 국한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

우리 안의 갑과 을 – ‘갑질’의 심층심리학적 이해

I. 들어가는 말

최근 대한민국에서는 우위에 있는 자가 하위에 있는 자에게 부당한 권력을 행사하는 사건들을 소위 ‘갑질’이라고 칭하며, 이에 대한 사회적 비난이 높아지고 있다. 통상 계약의 당사자를 순서대로 갑(甲), 을(乙)로 지칭하여, 우위인 측을 갑이라 하고 상대방을 을이라 한다. 갑과 을이 계약을 맺음으로써 갑을관계가 형성되는데, 최근 들어서 갑을관계는 지위, 계급의 고하(高下)를 표현하게 되어서 현재는 대기업과 협력업체, 업주와 종업원, 상사와 부하직원, 고객과 서비스업 종사자, 교수와 제자 등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 소위 ‘갑질’이란 갑을관계의 ‘갑’에, 좋지 않은 행위를 비하하는 접미사인 ‘질’을 결합한 말로서, 권력을 가진 자가 약자에게 행하는 부당행위를 지적하여 비난하는 유행어라고 볼 수 있다.

연일 뉴스와 인터넷 매체들을 통해 갑질이라는 용어가 사용되며 국민들의 공분을 사고  있으며, 정신건강의학과 진료실에는 ‘갑질을 당했다’는 사람들이 빈번히 마음의 고통을 호소하여 상담과 치료를 받고 있다. 이런 시대적 상황에서 의사로서 ‘갑질’ 현상에 대해서 심리학적으로 이해해야 할 필요성을 실감하게 됐다. 갑질에 대해 심리학적으로 고찰하려고 할 때, 그 시대의 다수의 구성원들이 공감하고 공유하는 유행어에는 집단 의식(Collective consciousness)이 반영되며, 또한 그 기저에는 각 개인의 개인적 무의식과 집단적 무의식이 관련되어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

필자는 소위 ‘갑질’로 불리는 사회현상에 대해 임상에서 경험한 사례들을 고려하여 심층심리학적 측면에서 의식과 무의식의 차원에서 이해하여 갑질이 발생하는 원인과 그 부정적인 영향을 해결할 방안을 모색하고자 한다.

II. 갑질의 사례와 유형

필자의 임상경험을 통해 수집한 갑질의 사례는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지속적으로 약자를 얕잡아보고 힘과 권력을 이용해 부당한 행위를 반복하는 상습적인 갑질이며, 둘째는 평소 평등한 관계를 유지해오던 사람이 특정한 상황에서 돌변하여 부당한 권력을 휘두르려 하는 우발적인 갑질이다.

1. 상습적 갑질

상습적으로 갑질을 하는 자는 대부분의 인간관계, 사회적 상황에서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 약자를 굴복시키고 조종하려는 성향을 보인다. 공격적이며 오만하고 거들먹거리는 태도가 몸에 배어 있고 타인이 복종하고 굴복할 때 만족감을 느낀다.

사례 A

대기업 브랜드의 하청을 받아 십여 년 간 제조공장을 운영하던 A 사장은 적극적이고 활기찬 사람이다. 그러나 본사의 담당 팀장이 매출 하락을 이유로 A 사장에게 일방적으로 계약해지를 통보했다. A 사장이 자초지종을 물었으나 본사의 팀장은 무례한 태도와 인격적인 모욕을 서슴지 않았다. A 사장은 본사의 매출 하락에 따른 계약 해지에 대해 납득은 했으나 담당 팀장의 안하무인의 빈정거리는 태도에 큰 충격을 받았다. A 사장은 분노에 휩싸였으나 점차 불안, 우울, 무기력에 빠져들고 밤에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죽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사례 B

새로 임용된 젊은  여성 법조인 B는 최근 심한 우울감에 빠져들었다. 가라앉은 기분과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 젖어서 출근을 해도 정상적인 업무를 할 수 없었다. 검토해야 할 서류는 쌓여갔지만, 처리할 집중력이 전혀 발휘되지 않았고, 문서 작성에서도 실수가 잦아져 더욱 난처해졌다. B는 같은 부서의 중년의 남자 상사로부터 ‘시집은 언제 갈 거냐? 시집이나 빨리 가라’ ‘여자는 이래서 안된다’ ‘그거 하나 제대로 못하나?’는 등의 모욕과 비난을 들어왔다.

사례 C

중년에 된 C는 때때로 심한 우울감을 느끼고 아무런 의욕이 없어지는 상태가 되곤 한다. 그럴 때면 대학원 시절 지도교수와의 일이 떠오른다. 연구보다는 보직 등 권력에 관심이 많은 지도교수는 겉으로는 매우 신사적인 사람이었지만 내부에서는 권위적인 태도로 제자들을 착취했다. C는 어려운 가정환경에서도 학자로서의 미래를 꿈꾸며 힘든 과정을 견뎌냈다. 어느 날 지도교수와의 면담에서 지도교수로부터 모멸감을 주는 말투로 ‘천한 것들에게 잘해줘 봤자 은혜를 모른다.’는 말과 함께 학위를 줄 생각이 없다는 말을 들었다. C는 그동안 이용만 당했다는 억울함과 어려운 형편에도 최선을 다했던 그간의 열정이 무너져내리는 충격을 받았다. 학자로서 성공할 수 있는 다른 길이 없었기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이후에 다른 일을 하고 있지만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우울감은 삶의 의욕을 꺾어버리곤 했다.

사례 D

공공단체의 팀장인 D는 공황장애와 우울증으로 진료실을 찾아왔다. D는 자신의 사생활도 없이 직장을 위해 헌신해온 매우 성실한 사람이다. 그러나, 1년 전 새로 부임한 상사는 비상식적인 업무지시와 인격적인 모욕, 협박, 막말과 욕설로 직원들을 몰아세웠다. D는 1년간 어떻게든 상사의 지시를 따르려고 했으나, 상사는 일관성 없는 태도로 고성과 욕설, 성적 모욕으로 직원들을 다그쳤다. 상사가 그렇게 한 이유는 직원들이 그 상사와 대등한 지위에 있는 다른 임원에게 충성하고 자신을 우습게 여긴다는 것이었다. D는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고, 불안과 공황발작, 우울감에 시달리다가 자신이 젊음을 바쳐 성장시킨 그 기관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D를 몰아붙인 상사 또한 불면과 불안의 문제를 갖고 있으며 음주 문제 또한 심각했다.

2. 우발적 갑질

평소 평등한 인간관계를 맺어오던 사람이, 특정한 상황에서 폭발적으로 힘을 남용하려 하여, 본인과 상대 모두 예상 밖의 상황에 당황하게 된다. 갑질을 하는 상황에서 감정조절이 되지 않아 본인도 불안과 공포에 압도되어 몸을 떠는 등의 신체증상을 나타내기도 한다.

사례 E

상사로부터 심한 모욕과 비난을 들어온 E는 우울증과 공황장애로 치료를 받고 있다. E는 퇴사 후 다른 직장에 취업을 하게 됐다. 새로운 직장으로 출근한 E는 자신의 부하직원들의 태도가 불손하고 자신을 우습게 여기는 것 같아서 몹시 불편했다. E는 자신이 이전 직장에서 상사에게 당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최대한 부하직원들을 인격적으로 대해주려고 노력했으나, 마음이 점점 불편해졌다. 어느 날 E는 부하직원들의 무례한 태도에 마구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르며 비난했고 거칠게 몰아붙였다. 퇴근 후에도 E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고 부하직원들에 대한 분한 마음과 더불어 자신이 그토록 분개해온 이전 상사가 한 짓을 자신이 똑같이 저지른 것 같아 더욱 절망적인 생각이 들었다.

III. 갑질의 심층심리학적 이해

상습적 갑질의 유형에서는 지속적으로 갑질이 일어나기 때문에 당한 사람은 심리적으로 만성적인 심한 스트레스를 경험하고 치료를 받기에 이르는 경우가 생긴다. 이때의 특징적인 임상양상 중 하나가 심한 무력감에 빠져서 의욕을 상실한다는 것이다. 상습적인 갑질을 가한 사람은 타인의 심적 고통에 대한 공감능력이 현저히 낮은 점에서 반사회적 인격 특성을, 권력에 몰두하고 자기중심적인 점에서 자기애적 인격 특성을 고려할 만하다. 상습적으로 갑질을 하는 자는 자신의 행동이 문제가 있다는 반성적 인식이 결여되어 있어서 그 행위 자체에 대해 상담을 받으려고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갑질을 당한 사람이 저항하려고 하면 더욱 철저히 비하하고 짓밟으려는 태도를 보인다. 그러나, 자신이 권력의 중심에 서지 못한 경우에는 불안과 우울, 불면 등의 증상을 겪고 치료를 받으러 병원을 찾는 경우가 있다.

우발적 갑질의 유형에서는 돌발적으로 갑질이 발생한다. 대개 일회성인 경우에 그쳐서 갑질을 한 사람도, 당한 사람도 진료나 상담을 받으러 오는 경우는 드물다. 임상현장에서 관찰할 수 있는 사례는 기존의 정신분석을 받던 사례가 경험하는 것인데, 가해자는 평소에 평등한 관계를 맺으려고 노력해왔고, 다소 내향적인 사람들인 경우가 많다. 평소 조용하고 소심했던 사람이 갑자기 권력을 잡게 되거나 자신의 지위가 위협받는다는 생각이 들 경우 폭발적으로 분노하고 주위 사람들을 억압하려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주위로부터는 ‘그럴 사람이 아닌데…’ ‘원래 그렇지 않은 사람인데…’라는 말을 듣게 되는 경우가 많다. 본인 스스로도 놀라고 흥분해서 후회하거나 부끄러워하는 등 내적 갈등을 겪는다. 갑질을 당한 사람은 돌변한 상대방의 태도에 당혹감을 느끼고 신뢰가 무너지고 실망하게 된다.

– 권력 콤플렉스

상습적이든 우발적이든 갑질을 당한 사람은 압도적인 힘과 권력의 공격에 무너져 이후 의욕과 희망을 잃게 된다. 갑질을 한 사람도 뭔가에 홀린 듯이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른 후 자괴감과 우울, 불안에 빠지는 일이 흔하다. 이것은 모두 자아와 이질적인 어떤 무의식적인 심리학적 내용, 즉 콤플렉스에 의해 일어나는 현상이다.

모든 인간은 무의식에 권력 콤플렉스를 갖고 있다. 갑질을 하는 사람은 무의식적인 권력 콤플렉스와 자아를 동일시하거나 권력 콤플렉스에 의해 사로잡힌 상태라고 볼 수 있다. 객관적인 상황판단을 하기보다는 권력에 의해 모든 것을 판단한다. 특히 권력에 집중할수록 타인과 자신의 감정에 대한 인지가 현저히 떨어진다. 이는 건강한 자아기능을 손상시키고 신경증적인 상태에 처하게 된다. 칼 구스타프 융이 지적한 대로 권력에 대한 집착은 본인이 표현하거나 인식하기를 꺼리고 있는 지독한 열등의식의 과보상인 경우가 많다.

– 그림자의 투사

갑질의 상황에서 갑과 을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둘 다 자신을 피해자라고 생각하고 상대방을 비난하는 것을 자주 본다. 갑은 을이 무능하고 게으르고 무책임하다고 비난하며, 을은 갑을 독재적이고 오만하고 폭력적이라고 비난한다. 둘 다 자신이 혐오하는 것을 상대방에게서 보고 비난한다. 이것은 자신의 무의식에 억압된 열등한 인격인 그림자상을 상대방에게 투사하는 현상이다. 투사는 혐오스러운 인격이나 부도덕함이 자신에게는 없고 남에게만 있다고 생각하는 자기방어 수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그림자가 자신의 무의식에 있다는 것을 의식화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준다.

– 갑질의 목적의미

과연 갑질의 등장이 나쁘기만 한 것인가? 갑질은 앞에서 살펴보았든 ‘힘’을 부당하게 사용하는 것을 비하하는 유행어다. 우리는 갑질이라는 유행어를 통해서 현재 한국사회에 만연한 불평등을 인식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리고, 상호 간에 그림자 투사를 통해서 각자의 내면에 억압되어 있는 그림자를 인식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주목해야 할 것은 갑질의 피해자인 을은 분노에 떨면서도 한없는 무력감에 빠져서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하고 의욕을 잃은 상태가 지속된다는 점이다. 실제 정신분석을 하면 초기에는 갑질을 당한 사람의 꿈에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서와 같이 반복적으로 갑질을 당하는 상황이 등장한다. 그러나, 정신분석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공격적이고 가학적이기만 했던 꿈 속의 갑이 손을 내밀어 화해와 협력을 청해 오는 경우가 있다. 이를 계기로 피분석자는 기력을 회복하고 삶에 적극적으로 뛰어든다. 이는 자신의 무의식의 그림자와 권력 콤플렉스를 의식화하는 작업과 관계가 있다. 이것은 소심하고 무력한 자에게 자신의 무의식의 힘을 의식화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인간은 갑과 을이라는 이분법으로 구분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자신을 전적으로 갑 또는 을에 동일시할 경우에 심각한 신경증이 발생한다. 우리는 내면에 갑과 을 모두를 가지고 있다. 갑질에 대해 반성하는 것은 좋으나 그것을 멸시하고 금기시하는 것만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갑질은 모든 사람의 무의식의 힘, 권력을 발견하고 그것을 건강하게 사용할 수 있는 인식의 기회를 제공해준다.

– 갑질의 심층심리학적 해결방안

갑질을 척결하여 해결할 수는 없다. 많은 한국인이 자신을 을로서 피해자라고 생각하여 갑질이라는 유행어가 탄생했지만, 피해의식에 사로잡히면 모든 인간관계를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구도로 왜곡하게 된다. 모든 인간의 내면에는 갑과 을이 공존한다. 이를 인식하여 자신의 힘과 권력을 건강하게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야 한다.

갑질은 기본적으로 독재자나 폭군과 같은 권력의 오남용이다. 권력의 우위에 있는 자는 당연히 이런 갑질을 해도 된다고 생각하고, 열세에 있는 자는 자신이 당해야만 할 뿐 다른 방법은 없다는 무력감에 젖어 있다. 여기에는 지위고하에 대한 뿌리 깊은 계급의식이 내재해 있다. 집단이 구분하는 계급만 보일 뿐 각각의 개인의 고유한 존재는 보이지 않는다.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는 평등의식이 결여되었을 때 갑질이 나온다.

갑질은 사회적 문제로서 올바른 평등의식을 심어주는 교육을 통해 우선 해결해야 한다. 계급의식을 버리고, 약자를 배려하며, 각 개인의 개성과 존엄성을 존중하는 교육, 힘을 적절하게 사용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현대의 갑질은 무엇보다도 돈과 관계가 깊다. 현대의 배금주의적인 문화의 개선이 시급히 요구된다.

개인의 치료에 있어서는 갑과 을의 이분법적 접근을 경계해야 한다. 누군가가 마음의 치료를 받고자 할 때 그는 단지 ‘갑질’ 등 하나의 문제만이 아니라 자신의 인생 전체를 가지고 치료자 앞에 마주 앉는다. 갑질은 하나의 계기일 뿐이다. 부모와의 갈등, 워커홀릭으로 자신을 잃어버린 생활, 뿌리 깊은 열등감, 어린 시절부터의 상실의 반복 등 모든 개인적 과거사와 함께 ‘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하는 인생의 문제를 들고 온다.

그런 사람을 갑이나 을, 하나로 규정하는 것은 그 사람의 내적 가능성을 제한하는 것이다. 치료자는 그의 무의식에 접근하여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의식의 인식의 범위를 확장시켜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도록 해주어야 한다. 을의 마음 속에 갑이, 갑의 마음 속에 을이 숨어 있음을 발견하는 것은 무척 고통스럽고 피하고 싶은 일이지만, 우리가 그림자를 외면하고 타인에게서만 그것을 찾으려고 하는 이상 우리는 상호비방과 증오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림자를 직면하고 의식화할 때 그는 갑과 을의 종속관계를 뛰어넘어 독립적인 온전한 인격체가 될 수 있다.

글 _ 정찬승 (융학파 분석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의학박사)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신보건위원회 상임위원
대한신경정신의학회·대한정신건강재단 재난정신건강위원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 이사
보건복지부 중앙정신보건사업지원단 재난정신건강정보센터 연구원
울산대학교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외래교수
마음드림의원 원장
http://maumdream.com

첨부파일: 제 4회 정신건강정책포럼 자료집_발췌

  • 이 글은 중앙정신보건사업지원단의 주최로 2016년 6월 30일 국립정신건강센터에서 열린 ‘2016년도 제4회 정신건강정책포럼 “갑을관계”_일상에서의 상처와 트라우마’에서 발표된 내용입니다.
  • 첨부파일은 포럼의 자료집 중 해당원고만을 발췌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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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자료집은 중앙정신보건사업지원단 홈페이지에 가입 후 다운로드 받을 수 있습니다.

치매 노인의 꿈 분석

한 달에 한 번 내 진료실에 찾아오는 할머니가 있다. 할머니의 모습은 세계적인 멋쟁이였던 젊은 시절 그대로다. 윤기가 흐르는 멋진 밍크코트에 손가락마다 반지가 빛난다. 머리단장이며 화장이 정말이지 근사하다. 처음 만나는 사람은 누구도 그녀가 치매를 앓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한다. 심지어는 자녀들도 머리를 갸우뚱할 때가 있다. 할머니는 노인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는 동안에도 주변의 몸이 불편한 환자들을 도우며 말벗이 되어주었다.

하지만, 할머니는 치매 환자가 틀림없다. 몇 달 동안의 입원 치료를 마치고 퇴원한 후 일주일 만에 진료실에 들어온 그녀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물었다. “누구시더라…?” 한 달에 한 번씩 외래에 올 때마다 묻는다. “정형외과 선생님이죠?” 또는, “재활의학과 선생님이죠?” 한참 대화를 나누다 보면 문득 생각이 난 듯 반가워할 때도 있다.

요양시설의 간호사가 꼼꼼히 적어 보낸 편지에는 할머니의 증상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투약거부, 이자극성, 공격적 행동 등등. 멋스러운 치장도 일 년의 시간이 지나자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화장이 어색해지고 어깨에 걸쳐진 밍크코트는 비뚤어졌다. 한 손가락에 두세 개씩 끼워진 반지는 무척 부조화스럽다. 보는 내가 불안하여 귀금속들을 잘 보관하시라고 조언해도 소용이 없다.

하지만, 할머니와 마주 앉으면 시간이 어떻게 가나 싶을 정도로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자신을 극진히 사랑해주던 부친에 대한 추억으로 시작해서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지냈던 젊은 시절의 이야기, 이제는 저 세상으로 가버린 지고지순한 남편에 대한 그리움, 후손들의 성공담. 한 달에 한 번 진료실로 찾아오는 할머니가 매번 처음 들려주듯 이야기해주는 내용들은 나에게는 새로울 것이 하나도 없다. 할머니의 머리 속에는 새로운 기억들이 내려앉을 자리가 없다. 하지만, 할머니의 빛나는 과거는 여전히 슬픈 현재를 위로해 주고 있다. 그리고, 치매의 정신행동증상이 심해져 지칠 대로 지쳐 진료실을 찾은 할머니는 보석처럼 빛나는 먼 옛날의 기억들로부터 위로를 받고 진료실을 나서곤 한다.

어느 날, 과거에만 매달리던 할머니의 마음이 새로운 변화를 겪게 됐다. 그것은 하나의 꿈이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나와 마주 앉아 행복한 과거에 젖어있던 할머니는 문득 생각난 듯이 말했다.

오늘 꿈을 꿨어요. 하늘나라 꿈이었지요. 고운 구름이 꼭 바닷가 백사장처럼 펼쳐져 있는데, 그 위에 남편하고 예수님이 함께 걷고 있는 거예요. 한참을 걷다가, 문득 남편이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푹 숙여요. 저 앞에 걸어가던 예수님이 남편에게 “왜 거기 서있느냐?”하고 물어요. 남편이 고개를 들고 예수님을 보면서 이렇게 얘기하더라구요. “제가 서있는 바로 이 아래에 제 아내가 살고 있습니다. 제가 먼저 하늘나라에 와서, 혼자 사는 아내를 위해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웃으시며 말씀하시는 거예요. “허허… 네 기도를 들어줄 테니 걱정하지 말아라. 네 아내는 참으로 행복한 여자로구나.”

할머니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 행복은 과거의 영화에 기대어 맛보는 허영이 아니라 할머니의 영적 현실이 주는 신성한 충만감이었다.

가끔 치매에 걸린 환자 중에서 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다. 노인병원에서 근무할 때 경험한 기이한 현상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저승사자’다. 임종을 앞둔 환자가 있을 때, 입원해 있는 다른 노인들이 검은 옷을 입고 돌아다니는 저승사자를 보는 것이다. 물론 꿈을 꾸거나 병적 증상으로서 환시를 경험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의료진이 “요즘 어느 환자가 위독하다.”라고 다른 환자들에게 말하지도 않을뿐더러, 다른 환자의 상태를 그렇게 자세히 알만한 인지능력도 없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런데도 임종 며칠 전에는 부쩍 저승사자가 많이 나타난다. 치매로 인해 환자의 인지기능은 떨어지지만, 무의식은 여전히 기능하거나, 아니면 약해진 의식의 장막 너머에서 오히려 더 예민해져 있는지도 모른다.

그 외에도 고향에 대한 꿈을 꾸거나 죽은 사람이 찾아오는 꿈을 꾸기도 한다. 치매 환자의 경우에는 꿈을 망상이나 환각과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굳이 구별하자면, 죽은 사람이 찾아오는 장면이 망상이나 환각이라면 그 증상이 오래 지속되겠지만, 꿈이라면 금방 잊히고 말 것이다. 아주 강렬한 꿈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꿈은 ‘휘발성을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쉽게 잊힌다.

다시 할머니 이야기로 돌아가자. 특이한 일은 그다음 달에 일어났다. 한 달 후 진료를 받으러 온 할머니는 외로움과 서글픔을 한참 풀어내다가, 갑자기 “신기한 꿈을 꾸었다.”며 지난달에 얘기한 그 꿈을 다시 꺼내 들었다. 물론 나에게 이미 이야기해주었다는 것도 다 잊은 채 오늘 꾼 꿈이라며 얘기하는 것이었다. 그러고 나서, 할머니는 얼굴에 슬픔이 걷히고 다시 행복한 미소로 진료실을 나섰다. 그런 일은 매달 계속되었다. 주치의의 얼굴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할머니가 하나의 꿈을 한 구절도 틀리지 않고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쉽게 잊히는 꿈들과 달리, 잊히지 않는 꿈들도 있다. 꿈을 만들어내는 무의식은 목적을 갖고 있다. 의식에 영향을 주어 정신의 온전함을 회복하고자 하는 것이다. 의식이 한쪽으로 치우쳐져 있어서 정신의 균형이 무너졌을 때 무의식은 꿈을 보내 그 균형을 회복한다. 기계적인 균형을 맞추는 것과는 다르지만, 의식이 한쪽으로 치우칠수록 무의식은 강한 상징을 내보내어 의식에 충격을 주는 일이 자주 있다.

할머니의 의식은 오래전에 기능을 상실하기 시작했다. 기억력은 갈수록 쇠퇴하고 몸 단장도 흐트러지며 우울과 상실감에 예민한 행동이 잦아진다. 할머니의 무의식은 흐트러지고 추락하는 의식을 붙잡아주려 그런 꿈을 보내준 것이 아닐까? 그것으로도 모자라 그 꿈이 잊히지 않도록 할머니의 뇌 어딘가에 그 꿈을 깊이 새겨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치매에 걸렸다고 해서, 말이 잘 통하지 않는다고 해서 상담을 소홀히 할 수는 없다. 인지능력이 떨어진 사람도 나름의 감정이 있고, 기억이 있고, 꿈이 있다. 치료자는 환자의 질병만 보아서는 안된다. 치료자는 아픔을 가진 ‘사람’을 보아야 한다.

오늘도 한껏 멋을 낸 할머니가 진료실에 들어와 앉는다. 그리고, 내 얼굴을 빤히 보면서 ‘이 사람이 누구더라…….’ 잠시 기억을 더듬는다. 내가 요양시설의 간호사가 보내준 편지를 보며 증상을 확인하고 상담을 시작하면, 할머니는 문득 생각난 듯이 환한 얼굴로 말한다.

오늘 꿈을 꿨어요. 하늘나라 꿈이었지요. 고운 구름이 꼭 바닷가 백사장처럼 펼쳐져 있는데……

  • 보건복지부 치매정보365(국가치매지식정보포털)에 기고한 에세이를 일부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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