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분석심리학 입문기

의과대학 시절 처음 분석심리학 이론을 접할 때는 그리 큰 흥미를 갖지 못했다. 하지만, 병원 실습 기간 중에 분석심리학회의 주최로 서울아산병원에서 열린 기초강좌에 참석하여 큰 충격을 받았다. 특히 이부영 선생님과 이죽내 선생님의 강의가 지금도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어떤 충격이었을까? 이전에는 들어보지 못한 인간의 정신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이 있었다. 내가 어렴풋이 느껴오던 무언가와 일치되는 느낌이 들었다. 정체되어 있던 마음이 활력을 얻게 되었고, 분석심리학에 대한 매력을 느꼈다. 이 모든 느낌은 젊은 시절의 회상이지만, 그 당시의 지적 흥분과 고양된 감정의 경험만큼은 지금도 확실히 남아 있다. 게다가 정신과 실습이 시작되고 보니 당시 주임교수로 계시던 연병길 선생님께서 분석심리학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지고 제자들을 가르치고 계셨다. 마음의 구조를 멋진 그림으로 그려서 알려주시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당시에는 ‘정신과 의사라면 분석심리학은 기본으로 알고 있구나.’ 하는 오해까지 하게 되었다.

여러 가지 방식이 있겠지만, 내가 수련을 받은 병원에서는 정신과 전공의가 되면 처음에는 정신분열병이나 양극성 정동장애에 해당하는 환자의 진료를 맡고 배우기 시작한다. 그런데, 수련의로서 첫해가 끝나갈 무렵 담당하게 된 환자는 약물치료보다도 집중적인 정신치료를 필요로 했다. 나는 자신이 없었다. 그런 내 심정을 알아보신 연병길 선생님께서 직접 정신치료 지도를 해줄 테니 열심히 해보라고 말씀해주셨다. 진지하게 정신치료에 임했고, 환자의 꿈과 연상도 수집했다. 열정은 높았지만, 실수투성이인 시간들이었다. 그런데, 놀라운 사건은 정신치료 지도 시간에 일어났다. 선생님과 토론을 하다 보니 내가 그토록 곤란함을 느끼고 어찌할 바를 모르던 환자의 현실의 문제와 꿈이 의미 있는 맥락으로 이해되기 시작했다. 요즘도 학회나 공개강좌 때 자주 나오는 질문 중 하나이지만, 그 당시에도 분석심리학이 임상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적용되는지가 모호했다. 하지만, 이해할 수 없었던 환자의 꿈속에 그림자와 아니무스들이 나타나는 것을 보고 어렴풋이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그에 더해 치료자의 자세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다. 환자의 정신치료에 대한 지도이면서도 자신의 치료자로서의 자세와 인간의 정신과 고통에 대한 자세를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후에도 여러 환자들의 정신치료를 지속하는 가운데, 분석심리학적 접근이 결코 모호한 것이 아니라 임상 실제에서 나타나는 정신현상에 대한 경험적인 학문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분석심리학파에서는 치료자 자신이 피분석자로서의 경험을 쌓아야 함을 강조한다. 오랜 기간 철저한 수련 없이 꿈을 해석하는 것을 심각하게 경계하고 있다. 끝을 알 수 없는 심오한 무의식에 대한 경험과 수련이 없는 상태에서의 섣부른 해석은 잘못된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고, 잘못된 해석은 환자나 치료자에게 오히려 해를 끼치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환자에게 꿈의 해석을 해주지 않아도 깊은 관심을 보이니 꿈속에 나타나는 상들이 변화되고 정신적 통합으로의 방향을 향해가며, 그러한 변화 중에 환자의 증상도 호전되는 것을 직접 경험한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한국융연구원에서 열린 전공의 교육 워크숍에서 케이스를 발표하며 한오수 선생님의 지도를 받기도 했다. 그래도 여전히 분석심리학은 어려운 학문이었다. 직접적인 경험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나 자신의 무의식을 체험하고 싶다는 소망이 강해져 연병길 선생님의 소개로 이부영 선생님으로부터 분석을 받기 시작했다. 그것은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사건이었다. 내 의식이 변화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내 개인적인 경험과 관련된 개인적 무의식과 더불어 내 경험과 연관을 지을 수 없고 오히려 인류의 보편적인 정신에 속하는 집단적 무의식을 체험하기 시작했다. 무의식은 나에게 크고 작은 메시지와 과제를 주었다. 내 의식의 일방성에 대한 무의식의 반응을 이제 의식의 자아가 통합해야 했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나타나 나를 괴롭히는 그림자들, 온갖 매혹과 알 수 없는 메시지를 던지는 아니마들, 어마어마한 충격으로 나타나는 여러 원형상들, ‘전체’의 감동을 전해주는 자기의 상(image)들은 분석을 통하지 않고는 결코 헤아릴 수 없는 무의식의 놀라운 메시지들이다.

무의식에 대한 경험이 가져온 내 삶의 변화는 수 없이 많고 크다. 허공을 맴돌며 부유하는 것 같던 나의 삶이 현실의 터전에 뿌리박고 설 수 있게 되었으며, 가족의 갈등이 해결되었고, 후손을 낳고 기르는 일을 기쁘게 받아들이게 되었고, 생기를 잃어가던 종교적인 태도에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완결과는 거리가 멀다. 여전히 진행되고 있고 새로운 변화를 기다리고 있는 과정의 일부다. 무엇보다도 내 삶이 페르조나의 허상들을 좇지 않고 중심을 향해갈 수 있는 동력을 얻게 되었다.

2004년에 분석을 받던 중에 강렬한 꿈을 꾸게 되었다.

“… 어떤 여자의 집이었다. 그녀는 아름답고 고상한 여자였지만, 얼마 전에 병으로 죽었다. 그리고, 그녀가 사랑했던 한 남자에게 그 집을 맡겼다. 그 남자는 하반신을 쓰지 못하는 불구였으며, 체구가 아주 컸고, 휠체어를 타고 다녔다. 집을 관리하며 지냈다. 슬픈 모습이었다. 그는 성실하게 집을 돌보았다. …

새벽녘의 바닷가, 절벽에 커다란 바위들이 있었고, 큰 파도가 바위를 때렸다. 적막하고 광활한 풍경이었으며, 파도 소리만 들렸다. 다리를 쓰지 못하는 큰 몸집의 사내가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 있었다. 사내는 큰 바위에 올라서서 그녀의 뒤에서 팔을 잡고 벌려주었다. 그녀는 팔을 벌리고 서 있다가 흰머리 독수리로 변했다. 새로운 태양이 떠오르며 그들을 비추었다. …”

샤머니즘에서 독수리는 영혼의 인도자로, 고통을 경험하고 쓰러진 샤먼을 저승으로 인도하고 영혼의 세계를 경험하도록 도와준 뒤 땅으로 데려온다. 그러한 과정을 거쳐 이승과 저승의 경험, 죽음과 재생을 통과한 한 명의 샤먼이 탄생하게 된다. 알 수 없는 여성과 독수리는 알 수 없는 세계인 무의식으로 인도해주는 무의식의 원형상이었다. 특히 독수리의 상징에 대한 확충을 하는 가운데, 명확한 한 마디로 환원할 수 없는,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큰 의미가 가슴으로 밀려들어 왔다. 이 꿈을 꾼 후 나는 무의식에 대한 더 깊은 탐구를 하고자 하는 마음이 들었고, 분석심리학 수련을 받기로 결심하게 되었다.

나는 몇 번인가 융을 만난 적이 있다. 우스갯소리 같지만, 꿈속에서 융을 만났다. 융은 엉뚱한 모습으로 산책을 하기도 하고, 열띤 논쟁으로 오히려 이중의 의미를 전달하기도 했다. 인상적이었던 꿈은 그가 동양인과 서양인 사이의 특수성과 인류의 보편성에 대해 어떤 학자와 논쟁하던 모습이다. 꿈속의 융은 종종 생각하고 고민할 거리들을 안겨 준다. 집단적 무의식에 대해, 또는 분석심리학 자체에 대해 근본을 돌아보도록 한다. 한 번은 융의 서재에서 당시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책을 보기도 했다. 나는 서가에 ‘홀로코스트 크리스마스’라는 제목의 책이 꽂혀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성탄절이 얼마 남지 않은 날, 잠에서 깨고 나서 그 의미를 알 수 없어 한참을 생각해야 했다. ‘온 땅의 축복인 예수님의 탄생일이 왜 끔찍한 홀로코스트와 나란히 적혀 있어야 하나?’ 그런 의문은 당시에 헤롯왕이 자행한 끔찍한 영아 살해가 떠오르며 해결되었다. 구원과 죽음의 양면성이 동시에 드러난 결정적인 장면이었다. 이 주제는 니콜라 푸생(Nicolas Poussin), 피테르 브뤼헐(Pieter Bruegel), 귀도 레니(Guido Reni) 등 여러 화가들에 의해서 작품으로 그려지기도 했다. 당시 활력을 잃고 있던 나의 영적 측면은 성탄에 대해, 구원에 대해 새로운 이해와 경험을 하게 되었다.

정신분석을 받고, 분석심리학을 공부하고, 꿈속에서 융을 만나도 항상 되새기게 되는 것은 ‘전체의 중요성’이다. 한쪽 방향만이 아닌 전체를 보는 것은 지금도 어렵고 앞으로도 어려울 것이다. 융의 저서가 아직 난해하게 느껴지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닌가 생각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석심리학에 집중하게 되는 것은 그것이 실제로 내 삶에 변화를 가져오고, 치료자로서의 나의 세계관을 넓고 깊게 만들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원고를 의뢰받고 나서 바로 수락한 것이 몹시 후회가 된다. 회보에 ‘융과 나’를 쓰기에는 나의 경험과 지식이 일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저 분석심리학과의 만남과 이후의 경험의 단편들을 가급적 평이하게 사실 그대로 전달하고자 노력했다. 어떤 독자는 분석을 받는 과정과 변화에 대해 너무 낭만적으로 기술하거나 미화한 것이 아닐까 오해할 수도 있겠다. 실제로는 과장되게 보일까 염려하여, 최대한 축소하고 자제해서 쓰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소중한 내적 경험을 공개하는 것에 대한 내향형의 두려움일 수도 있겠다. 덧붙여, 무슨 학파의 분석가로부터든 정신분석을 받은 사람들의 다수가 인생의 가장 소중한 시절로 그 시기를 회상한다는 사실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혹시라도 분석심리학이나 융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참고라도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하며 글을 마친다.

글쓴이: 정찬승

  • 2010년 한국융연구원의 소식지 ‘길’의 ‘융과 나’ 코너에 투고한 에세이를 일부 수정했습니다. 분석가 수련과정에서 작성한 조심스러우면서도 열정에 찬 글을 다시 읽으니 즐거운 추억에 잠기게 됩니다.  기록을 보존하기 위해 여기 남겨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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