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과 마음: 건축을 통한 치유

정신분석은 인간 정신의 심층을 이해하기 위해 꿈을 분석한다. 꿈에는 온갖 사람과 동물이 등장하고 심지어 현실에 없는 괴물이나 신, 요정과 이물이 찾아오기도 한다. 꿈에 등장하는 모든 요소는 그 사람의 무의식의 콤플렉스를 반영하는 상징이다. 상징을 자세히 살펴보고 이해하기 시작하면 그 사람의 심혼에 깃든 비밀의 문이 열리고 치유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다. 그때 간과하기 쉬운 것이 있다.

바로 그 모든 콤플렉스가 등장하고 만나서 사건이 벌어지는 ‘공간’이다. 꿈의 공간 중에 특히 건물이 무대가 되는 일이 많다. 미로 같은 복도를 정신없이 헤매다가 뒤쫓아오는 괴물에게 붙잡히기 직전에 비명을 지르며 깨어나기도 하고, 평생 본 적이 없는 너무나 완벽하고 멋진 신전을 거니는 황홀한 경험을 하기도 한다. 발코니가 무너진 집에서 속상해하기도 하고, 존재조차 몰랐던 나선 계단을 한참 내려가 지하실의 문을 열어 조상의 유산을 발견하는 꿈을 꾸기도 한다.

꿈에 등장하는 건축물은 바로 그 사람의 마음의 구조다. 집을 그려보면 그 사람의 마음이 드러난다. 폐쇄성과 개방성, 규칙과 자유, 풍요와 빈곤, 전통과 현대 등을 포함해서 말로 미처 다 표현하지 못할 오묘한 마음이 건물에 반영되어 나타난다.

정신분석을 설명하는 가장 멋진 표현이 ‘건설적인 작업(constructive work)’이다. 트라우마를 겪으면 마음이 무너진다. 마치 건물처럼. 그 마음을 다시 세우고 더욱 멋지고 개성 있게 만들어가는 것이 바로 건설적인 작업이다. 마음의 치유는 해체가 아닌 건설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많은 사람이 자신만의 건축물을 짓고 싶어 한다. 집단적인 기준에 맞춰 사느라 억눌러온 자신의 참모습을 표현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므로 획일성을 벗어나 개성을 추구한다. 그것은 기존에 자기가 알고 있던 자신의 모습을 넘어서며, 지금까지 미처 몰랐던 깊은 내면을 드러낸다. 훌륭한 건축가는 작업을 통해 개성을 끌어내고 살리는 작업을 한다. 또한 숙련된 체험을 통해 그것이 현실과 조화를 이루도록 다듬어준다. 이것은 마치 정신분석가의 작업과 같다. 건축가는 외면적으로, 정신분석가는 내면적으로 작업하는 것이 다를 뿐 결국 그 둘은 건물과 마음이 만나는 자리에서 하나가 된다.

건축가 이인기가 표방한 ‘건축을 통한 치유’라는 확고한 철학, 평등한 관계를 바탕으로 한 이해, 건물사용자의 경험과 감정을 헤아리는 공감은 그가 건축과 치유 전체를 깊이 통찰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철두철미한 건축 작업과 온화한 인간 심성 양쪽을 아우르며 물질과 정신을 만나게 한 그의 세계관에 성원과 갈채를 보낸다.

  • 건축가 이인기, 김지윤, 미쉘리, 양푸른누리가 펴낸 『Tracing ; 투영과 추적』의 추천사 일부를 수정했습니다.

글쓴이: 정찬승 (융학파 분석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의학박사)
국제분석심리학회 정회원
한국분석심리학회 이사
대한신경정신의학회·대한정신건강재단 재난정신건강위원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 이사
울산대학교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외래교수
마음드림의원 원장
http://www.maumdream.com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5766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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