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과 마음: 건축을 통한 치유

정신분석은 인간 정신의 심층을 이해하기 위해 꿈을 분석한다. 꿈에는 온갖 사람과 동물이 등장하고 심지어 현실에 없는 괴물이나 신, 요정과 이물이 찾아오기도 한다. 꿈에 등장하는 모든 요소는 그 사람의 무의식의 콤플렉스를 반영하는 상징이다. 상징을 자세히 살펴보고 이해하기 시작하면 그 사람의 심혼에 깃든 비밀의 문이 열리고 치유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다. 그때 간과하기 쉬운 것이 있다.

바로 그 모든 콤플렉스가 등장하고 만나서 사건이 벌어지는 ‘공간’이다. 꿈의 공간 중에 특히 건물이 무대가 되는 일이 많다. 미로 같은 복도를 정신없이 헤매다가 뒤쫓아오는 괴물에게 붙잡히기 직전에 비명을 지르며 깨어나기도 하고, 평생 본 적이 없는 너무나 완벽하고 멋진 신전을 거니는 황홀한 경험을 하기도 한다. 발코니가 무너진 집에서 속상해하기도 하고, 존재조차 몰랐던 나선 계단을 한참 내려가 지하실의 문을 열어 조상의 유산을 발견하는 꿈을 꾸기도 한다.

꿈에 등장하는 건축물은 바로 그 사람의 마음의 구조다. 집을 그려보면 그 사람의 마음이 드러난다. 폐쇄성과 개방성, 규칙과 자유, 풍요와 빈곤, 전통과 현대 등을 포함해서 말로 미처 다 표현하지 못할 오묘한 마음이 건물에 반영되어 나타난다.

정신분석을 설명하는 가장 멋진 표현이 ‘건설적인 작업(constructive work)’이다. 트라우마를 겪으면 마음이 무너진다. 마치 건물처럼. 그 마음을 다시 세우고 더욱 멋지고 개성 있게 만들어가는 것이 바로 건설적인 작업이다. 마음의 치유는 해체가 아닌 건설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많은 사람이 자신만의 건축물을 짓고 싶어 한다. 집단적인 기준에 맞춰 사느라 억눌러온 자신의 참모습을 표현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므로 획일성을 벗어나 개성을 추구한다. 그것은 기존에 자기가 알고 있던 자신의 모습을 넘어서며, 지금까지 미처 몰랐던 깊은 내면을 드러낸다. 훌륭한 건축가는 작업을 통해 개성을 끌어내고 살리는 작업을 한다. 또한 숙련된 체험을 통해 그것이 현실과 조화를 이루도록 다듬어준다. 이것은 마치 정신분석가의 작업과 같다. 건축가는 외면적으로, 정신분석가는 내면적으로 작업하는 것이 다를 뿐 결국 그 둘은 건물과 마음이 만나는 자리에서 하나가 된다.

건축가 이인기가 표방한 ‘건축을 통한 치유’라는 확고한 철학, 평등한 관계를 바탕으로 한 이해, 건물사용자의 경험과 감정을 헤아리는 공감은 그가 건축과 치유 전체를 깊이 통찰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철두철미한 건축 작업과 온화한 인간 심성 양쪽을 아우르며 물질과 정신을 만나게 한 그의 세계관에 성원과 갈채를 보낸다.

  • 건축가 이인기, 김지윤, 미쉘리, 양푸른누리가 펴낸 『Tracing ; 투영과 추적』의 추천사 일부를 수정했습니다.

글쓴이: 정찬승 (융학파 분석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의학박사)
국제분석심리학회 정회원
한국분석심리학회 이사
대한신경정신의학회·대한정신건강재단 재난정신건강위원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 이사
울산대학교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외래교수
마음드림의원 원장
http://www.maumdream.com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5766399

원형의 힘: 국제분석심리학회 학술대회 참관기

원형의 힘

– 국제분석심리학회 학술대회 참관기 –

 

정찬승 (융학파 분석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Chung Chan-Seung, M.D., Ph.D., Jungian Analyst

maumom@gmail.com

 

깊은 어둠의 나락으로 떨어져 오히려 엄청난 감동을 선사하는 차이콥스키 교향곡 비창의 4악장 연주를 마치고 서둘러 짐을 챙겨 공항으로 향했다. 오케스트라 연주 일정이 겹치는 바람에 오랫동안 기다려온 국제분석심리학회의 개회식에 참석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지만, 차이콥스키의 진중한 감동이 예술의 도시로 향하는 발걸음에 힘을 실어주었다.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에는 2009년 알츠하이머 협회가 개최한 국제학회에 치매 연구자로서 수만 명에 달하는 뇌 영상 자료와 치매 연구 자료를 분석해서 발표하기 위해 방문한 적이 있다. 10년 만에 같은 도시를 전혀 다른 자격인 융학파 분석가가 되어 찾게 되니 감회가 새로웠다. 1907년 32세의 젊은 카를 구스타프 융이 지그문트 프로이트를 내방하여 중대한 첫 만남을 가졌던 바로 그 빈! 근대의 영광을 간직한 우아한 건축물과 여름의 끝자락에 어김없이 열리는 라트하우스 광장의 축제가 방문객을 환영해주었다. 밝은 금발 머리에 선명한 붉은색과 흰색이 인상적인 친절한 시민들도 여전했다.

학회가 열린 빈 국립대학교(Universität Wien)는 1365년에 설립되어 수많은 위대한 학자를 배출한, 중부 유럽에서 3번째로 오래된 대학이다. 찬란한 문화 예술을 꽃피운 아름다운 도시의 유서 깊은 대학으로 전 세계 1,200명 이상의 참가자가 몰려들었다. 국제분석심리학회 사상 최고의 대성황이었다. 나이 지긋한 분석가가 대부분일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젊은 수련생들도 많이 참석해서 그야말로 분석심리학을 중심으로 한 집중력과 다양성이 충만한 학회였다.

 

매일 오전 Plenary Lectures가 열린 대강당은 앉을 자리를 찾기 힘들 정도였다. 다양한 주제의 강연이 화려하게 펼쳐진 훌륭한 공부의 기회였다.

덴마크의 Ole Vedfelt는 ‘Integration versus conflict between schools of dream theory and dreamwork – Integrating the psychological core qualities of dreams with the contemporary knowledge of the dreaming brain’이라는 장황한 제목으로 뇌과학과 꿈의 해석을 연결하는 매우 명료한 강연을 해서 큰 호응을 얻었다. 뇌의 각 영역에 따른 꿈의 발현을 예시로 들고 알기 쉬운 사례를 들었는데, 복잡한 여러 가설들의 통합을 위한 노고가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예시로 든 꿈의 상징을 집단 무의식의 원형상으로서의 측면을 파고들기보다는 뇌의 생물학적 속성으로 환원시키려는 가벼운 접근 방식 때문에 나로서는 크게 동의하기 어려웠다.

점심시간에 이나미 선생님의 소개를 받아 뉴욕에서 온 Beth Darlington과 Royce Froehlich를 만나 식사를 하며 환담을 나누었다. 두 분의 이나미 선생님에 대한 진한 애정과 존중을 마음 가득 느낄 수 있었다. 이나미 선생님이 뉴욕 수학 시절 얼마나 열심히 연구하고 좋은 교분을 쌓았을지 미루어 짐작이 갔다. 뉴욕의 여러 분석가들이 이나미 선생님을 그리워하며 안부를 전해달라고 했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특유의 재치와 예리한 통찰로 웃음이 그칠 새 없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그 와중에도 일부 분석가들이 정신분석 이론을 뇌 영상 등 뇌과학을 통해 입증하려는 시도의 모순성을 경계했다. 뇌의 구조와 기능 연구를 지고의 심판자처럼 떠받들어 고도의 정신분석 이론을 검증하는 행태가 얼마나 한심한 유물론적 어리석음인가 하는 것이다.

 

수요일 오전에는 융과 프로이트의 서간문을 중심으로 문헌을 재구성하여 두 거장의 대화를 창작하여 마치 연극을 하듯 두 명이 낭독하는 특이한 발표가 있었다. 빈이라는 도시가 그들의 만남의 무대이기에 더욱 흥미진진했다. 서로에 대한 매혹과 집착, 애증을 극적으로 펼쳐 보여서 청중이 폭소하는 일이 많았다. 융과 프로이트의 학문적 고민과 갈등보다는 투사와 전이에 초점을 두고, 가상의 대화를 창작한 허구성 때문에 나는 이것이 학술 발표라기보다는 여흥 거리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발표 후 갈채가 잦아들자 몇몇 분석가들이 점잖게 문제점을 지적했다.

목요일 저녁에는 Murray Stein과 Henry Abramovitch가 집필한 희곡 ‘The Analyst and the Rabbi’를 무대에서 연기한 필름을 감상했다. 첼로 선율을 곁들여 융과 랍비 Leo Baeck의 진지한 대화가 아니마의 매개로 이어지는 밀도 높은 작품이었다. 나치즘과 반유대주의 등 시대적 배경 속에서 그림자를 의식화하는 것을 주제로 했다. 상영 후 Murray Stein을 비롯해서 영상 제작에 참여한 스태프들의 좌담과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Murray Stein은 희곡 집필의 계기를 설명하며, 실제로 있었던 융과 랍비의 만남이 매우 중요했을 터인데, 그들이 나눈 대화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전혀 없기에 강한 호기심을 느껴서 여러 방면의 조사를 거쳐서 창작했다고 밝혔다. 한 분석가가 일어서서 ‘이것은 실제 융과 랍비가 나눈 대화가 아니다. 당신 안에 있는 것이 표현된 것이다. 당신은 이 작품을 통해 당신 무의식의 무엇을 표현하고자 했나?’라고 질문했다. Murray Stein은 즉답을 피했다.

융은 특출나게 비범한 데다가 매력적이기까지 한 위대한 인물이다. 융을 소재로 소설가나 작가가 허구의 작업을 한 것은 이미 얼마든지 있고 납득이 간다. 그러나, 학술대회에서 학설에 대한 연구가 아니라 학자 개인을 소재로 삼아 뭔가를 만들고 발표하는 것이 그리 큰 가치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융을 통해 세상에 나온 분석심리학이 다시 융의 개인사에 대한 관심으로 환원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물론 융의 일생과 주요 사건들에 대해서 자세히 살펴보는 것이 분석심리학을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융이 공개를 금한 ‘붉은 책(Das Rote Buch)’을 출간한 것만으로도 이런 작업의 범위는 충분하고도 넘칠 지경이다. 도저히 알 길 없는 융의 개인적 만남과 대화에까지 자신의 상상력을 보탠 극작이 과연 분석심리학을 심화시킬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융이라면 이런 행태에 대해 뭐라고 할까?

 

몇몇 연자들은 융의 저작이나 원형에 대한 언급 없이 각종 타 학파의 이론과 뒤섞여 정체가 모호한 발표를 하기도 했다. 특히 트라우마에 대한 이론과 사례에서 그런 경우가 많았는데, 객관적 현실의 중요한 실제 인물상에 집중한 나머지 주관 단계의 심오한 내적 원형상에 대해서까지는 언급되지 않는 것이 아쉬웠다. 그러나, 이런 발표는 일부에 지나지 않으며, 많은 발표는 주관 단계 해석과 집단 무의식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했다.

미국의 Donald E. Kalsched는 ‘Opening the closed heart: Affect focused clinical work with the victims of early trauma’ 제하로 자신의 트라우마와 분석을 통해 얻은 치유와 통찰을 공개하고 아동기 트라우마를 경험한 분석 사례를 정리해서 발표하여 큰 감동을 주었다. 또한 마지막 날 Peter Ammann, Fred Borchard, Renee Ramsden, Nomfundo Mlisa는 ‘Encountering the other: Jungian analysts and traditional healers in South Africa’라는 제목으로 남아프리카의 전통 치료사와 융학파 분석가가 정기적으로 만나서 교류하며 치유와 상징에 관해 토론하는 모습을 생생하게 보고하여 그 체험을 공유하는 값진 경험을 할 수 있었다.

학회 참가자 전체가 참석한 Plenary Lectures에 대한 평가는 청중의 반응으로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청중은 집단 무의식의 원형상이 강력하게 표현되는 강연에 진심이 담긴 반응을 보였다. 세계 각지에서 온 분석가들이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고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훌륭한 강의를 한 연자는 질문에 답하는 태도에서도 과연 진심 어린 공감이 느껴졌다. 어떤 참가자는 원형상이 불러일으킨 정신적 흥분 때문에 격앙된 반응을 하기도 했다. 이것은 국내학회에서도 종종 볼 수 있는 현상이며, 원형이 살아 움직이고 있음을 보여주는 생생한 방증이기도 하다.

 

오전의 열기 넘치는 Plenary Lectures가 끝나면, 오후에는 수십 개의 강의실에서 Break-out Sessions가 열렸다. 세계 각지에서 날아온 분석가들이 심혈을 기울여 연구한 주제를 발표했고, 그것을 선택하여 듣는 것은 큰 기쁨이었다. 나는 특정 분야에 치우치지 않도록 다양한 주제를 듣기로 했다. 집단 무의식의 원형상에 대한 많은 인상적인 발표가 있었고, 특히 이번 학술대회 주제인 ‘Encountering the Other: Within us, between us and in the world’와 관련해서 국가, 인종, 젠더 등 모든 종류의 다양성을 이해하려는 시도가 두드러졌다. 샌프란시스코 융 연구소는 ‘Reflections on the exclusion and inclusion of ethnically and economically diverse populations in the experience of the C. G. Jung Institute of San Francisco: Organizational change and “the other”’ 제하로 경제 수준, 인종, 젠더 등 모든 다양성을 존중하고 통합하려는 실제 노력을 보여주어 정책에 대한 식견을 넓혀주었다.

 

학회에 함께 참석한 한국의 분석가 중에 강연을 한 분은 이보섭 선생님(Der Kindarchetyp im Film “Little Buddha”), 이문성 선생님(Jungian understanding of “the pairs of Dharma” of Zen Buddhism), 이나미 선생님(Genetics and evolutionary psychiatry as “the others of Jungian psychology”)이 있다. 시간이 겹쳐서 모든 강연을 들을 수는 없었지만, 그간의 연구를 중심으로 훌륭히 전달하셨으리라 생각한다. 다행히 이나미 선생님의 강연에 참석할 수 있었는데, 새로운 주제와 개념이 빛나는 멋진 시간이었다. 강연 중에 많은 질문이 쏟아졌고 진지한 토론이 펼쳐졌다.

 

나는 화요일 오후 Break-out Sessions에 제1호 강의실에서 강연을 했다. 존경하는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콘라트 로렌츠가 배우고 가르친 강단에 서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영광이었다. 동시간에 수십 개의 강의실에서 다양한 강연이 열리는데도 불구하고, 학회에 처음 등장한 젊은 분석가의 강연을 듣기 위해 많은 분석가들이 진지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그것은 강연의 주제 때문일 것이다. 나는 비극적인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한국융연구원에서 1년여간 진행한 재난심리연구 모임의 성과를 요약해서 ‘재난의 심리적 의미(The Psychological Meaning of Disaster)’를 발표했다. 연구의 계기와 배경, 연구원들에 대해서 소개한 후 재난 생존자, 유가족, 치료자의 꿈을 분석하고 신화, 민담, 한국의 전통과 연결하여 확충하는 작업과 방대한 연구조사를 통해 도출한 재난이 인간 심성에 주는 의미에 대해 전달했다.

강연이 끝난 후 질문과 답변이 이어졌고, 이후에도 여러 분석가와 수련생이 찾아와 자신도 그 참사에 큰 충격을 받고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데, 이렇게 한국인들이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그 의미를 발견해가는 과정을 전해줘서 정말 감사하다는 인사를 많이 받았다. 학회를 마무리하는 만찬장에서는 미국의 한 분석가로부터 내 강연이 이번 학회에서 가장 훌륭하고 감동적이었다는 찬사까지 받았다. 전하기에도 쑥스러운 이러한 호평은 생존자와 유가족을 오랫동안 만나고 도운 이주현 선생님에게 돌아가야 마땅하다. 또한 민담과 신화를 잘 정리한 김지연 선생님과 모든 연구를 지원하고 깊은 통찰로 지도해주신 이부영 선생님이 받아야 할 영광이다.

 

학회가 열린 빈 국립대학교와 만찬 행사가 열린 Palais Ferstel에서는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는 많은 분석가들과 만나 인사를 드렸다. Joseph Cambray, Lynda Carter, Ann Belford Ulanov 등 여러 분석가들이 한국에서의 추억을 얘기하며 이부영 선생님께 감사와 안부 인사를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만찬장에는 이문성 선생님 내외분과 이보섭 선생님이 참석했다. 이보섭 선생님의 정성이 담긴 배려로 많은 주요 인사들을 소개받을 수 있었다. 분석가이자 Daimon 출판사 편집자인 Robert Hinshaw는 내년에 볼링겐 타워를 안내하겠다며 기꺼이 한국의 분석가들을 초대했다. 환한 미소를 지으며 열린 태도로 환영해주는 사람들을 만나며, 이보섭 선생님이 그간 쌓아온 넓고 깊은 신뢰와 우정에 감탄했다.

학회의 백미는 진솔한 마음이 통하는 동료와의 만남이다. 옆좌석에 나란히 앉아서 내 강의를 들었다며 인사를 건네고, 생소한 북유럽과 동유럽의 분석가들을 안내해준 리투아니아 수련생의 순수한 친절이 기억난다. 로스앤젤레스의 Judith Hecker는 사려 깊은 맑은 눈으로 세월호 참사의 트라우마와 회복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며 미국에 오거든 꼭 자기 집으로 오라고 당부하며 과분한 초대를 했다. 호텔에서 조식을 하던 중 우연히 대화를 시작한 미국의 Karen Smyers와의 만남도 즐거운 추억이다. 내 바로 다음 순서였던 그녀의 강연 제목은 ‘When Jungian theory itself is other to one’s soul: Gender-fluid models of individuation from ancient Egyptian myth’였다. 비록 참석하지는 못했지만, 내가 그 제목과 얼굴을 기억하자 그녀는 금세 밝은 표정으로 자신의 암 투병 경험과 그 가운데 발견한 고통과 치유의 의미, 그리고 이집트 신화가 준 지혜를 들려주었다. 우리는 젠더 이슈와 분석심리학의 원형에 대해 공감대를 이루었다. 그 대화를 통해 나는 임상에서 젠더 이슈를 가진 피분석자와 분석을 진행하며 겪는 난관을 해결할 실마리를 얻었다. 그것은 어떤 합리적인 개념의 발견이라기보다는 진실한 만남이 주는 정서적 변화라고 생각한다. 학회를 마치고 들른 빈 미술사박물관에서 재회한 그녀는 자신의 주제인 이집트 예술을 감상하러 왔다며, 3년 후 꼭 다시 만나자면서도 암이 허락해주어야 하는 것 아니겠냐며 소리 내어 웃었다. 나는 그녀와 다시 만나 새로운 체험과 이집트 신화 연구를 듣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했다.

여러 크고 작은 학회에 관여하고 참가해 왔지만, 이처럼 곳곳에서 학자들과 만나 공감하고 대화하며 자신의 삶과 원형적 체험을 공유하는 기회는 일찍이 가져본 적이 없다. 그 따뜻한 환대와 공감이야말로 깊은 인간 심성의 본질을 체득한 개인이 전달하는 최고의 선물일 것이다.

 

학회장과 만찬장에서의 새로운 기류 중 하나는 동유럽과 동아시아 분석가 그룹의 급성장이다. 대만에서는 동아시아문화정신의학회를 통해 익히 안면이 있는 Hao-Wei Wang이 수십 명의 동료와 함께 참가했는데, 최근에 분석가가 대거 배출되어 대만이 약 30명의 분석가가 활동하는 그룹이 되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국제분석심리학회 신임 회장에 취임한 일본의 Toshio Kawai는 세계 각지에서 융학파 분석가 그룹이 발전하고 확장되어 큰 변화가 있다며 여러 계획을 제안했다. 나는 한국융연구원이나 한국융분석가협회의 대표자로서 참석한 것이 아니라 그저 배우기 위해 참석한 것이라서 여러 제안에 확답하지는 않았고, 한국에 가서 잘 전하겠노라고만 해두었다.

졸필로 참관기를 자세히 기록하는 것은 늘 감사드리는 이부영 원장님과 고마운 선배 및 동료 분석가들에게 경과를 보고하고, 한국융연구원에서 정통 분석심리학을 공부하는 후배 수련생들을 격려하기 위한 어떤 의무감 때문이다. 학술대회에 함께 참가하여 부족한 후배를 아끼고 챙겨주신 선배 분석가들의 마음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따뜻해진다. 바쁜 일정 가운데 학회장 안팎에서 교류를 터주고 응원해주신 이나미 선생님과는 함께 있기만 해도 저절로 어깨가 펴졌다. 이문성 선생님 내외분이 베풀어준 후의도 잊을 수 없다. 한국인 참가자들을 모아 열어주신 만찬으로 웃음과 생기를 찾아 남은 일정을 헤쳐나갈 수 있었다. 라트하우스 광장 축제에서 술잔을 기울이다가 갑자기 쏟아진 폭우에 흠뻑 젖으면서도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 이보섭 선생님의 인도를 받아 역사적인 카페에 앉아서 나눈 속 깊은 대화, 동행하여 돌아본 유서 깊은 멜크 수도원, 10년 만에 방문해서 새로운 감동을 맛본 알베르티나 미술관은 평생 가져갈 소중한 추억이다. 나는 전심으로 후배를 위해 애써주신 이보섭 선생님의 은혜를 조금이나마 갚고자 소박하고 정겨운 호이리게로 안내하여 녹음이 우거진 정원에서 와인의 흥취와 함께 빈의 마지막 밤을 만끽했다.

 

만찬에 동석한 스위스의 Kristina Schellinski가 내 첫 참가를 축하하며 진지하게 물었다. 이 학회에서 가장 기억에 남을만한 것이 무엇이냐고.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원형의 힘’이라고 답했다. 그녀는 뜻밖의 대답에 놀라면서도 이어지는 내 말에 곧 수긍했다. 사상 최대 규모의 국제분석심리학회 학술대회에 참석하여 느낀 첫인상은 분석심리학의 확장이다. 분석심리학은 그 개념도 확장되고 양적으로도 팽창하고 있다. 그에 따른 오염의 위험성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어서 더러 불편하기도 했다. 일부에서는 간소하고 얄팍해진 분석가 수련 과정을 쫓아다니고 유명 인사와의 무의미한 친분을 과시하는 등 외적 페르조나의 팽창이 급속도로 이루어지는 만큼 분석심리학은 오염의 위기를 겪고 있다. 그런 경계심은 실재하는 것이기도 하고 내 그림자의 투사이기도 하다. 그 후 여러 강연과 만남을 통해 확신한 것은 확장이든 오염이든 그것을 압도하는 집단 무의식의 원형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분석심리학자들의 가슴에 여전히 살아있다는 것이다. 분석심리학의 중심에서는 전체정신의 중심인 자기원형이 그 탐구자들을 끊임없이 온전함으로 이끌어줄 것이며, 급속한 확장에 가려 눈에 잘 띄지는 않지만 무의식의 심층을 깊이 진지하게 고찰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성실한 분석가들이 그 진의를 생생한 체험으로 드러낼 것이다.

 

각국의 대표단은 클림트의 벽화로 화려하게 장식된 연회장에서 열린 회의를 통해 2022년 국제분석심리학회 개최지로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선정했다. 지구상 한국의 대극에 위치한 아르헨티나에서 열리는 차기 학술대회에는 많은 한국 분석가와 수련생들이 참가하여 세계 각지에서 다양하게 적용되며 연구되고 있는 분석심리학을 접하고, 그 기저에 약동하는 원형의 힘을 느끼기를 바란다. 또한 외면적 확장을 넘어서는 내면적 심화를 통해 한국융연구원이 얼마나 철저하고 훌륭하게 분석심리학의 정수를 교육하고 있는지 실감하기를 바라며 참관기를 마친다.

 

XXI International Congress for Analytical Psychology

Encountering the Other: Within us, between us and in the world

August 25-30, 2019, Vienna, Austria

International Association for Analytical Psychology

 

정찬승 (융학파 분석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Chung Chan-Seung, M.D., Ph.D., Jungian Analyst

2019년 5월 18일: 한국분석심리학회 춘계학술대회 강연

2019년 5월 18일 한국분석심리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 “자해의 의미” 제하의 강연을 했습니다.

일 시 : 2019년 5월 18일 (토) 오후 1:00-오후 5:30
장 소 : 서울대학교병원 의생명연구원 강당

13:00 ~ 15:00
사례 1.
자해의 의미………………………….정찬승 (마음드림의원)
토 론……………………………………김성민 (월정분석심리학연구소)

15:00 ~ 15:20 coffee break

15:20 ~ 16:50
사례 2.
내담자의 죽음과 치료자- 애도와 개성화과정을 중심으로
발 표…………………………….김지연 (김지연 융 심리분석연구소)
토 론…………………………….이광자 (세림서울정신건강의학과의원)

16:50 ~ 17:30
종합토론……………………………………….김진숙 (김진숙 심층심리연구소)

2018년 2월 2일: 한국분석심리학회 홈페이지 개편

한국분석심리학회 창립 40주년을 맞이하여 홈페이지를 개편했습니다.

누구나 모든 게시물과 자료를 볼 수 있도록 공개했으며, 홈페이지 회원 가입 절차는 폐지했습니다.

앞으로 학술지 자료를 업로드하고 학회의 역사 자료를 보완할 예정입니다.

공지사항 코너에는 한국분석심리학회, 한국융연구원, 한국융분석가협회에서 주관하는 행사와 회원에게 반드시 알려야 하는 중요 사항을 게시하겠습니다.

분석심리학 코너에는 분석심리학의 기초 개념과 핵심을 이루는 내용을 학술대회 초록을 중심으로 게시하겠습니다.

에세이 코너에는 한국융연구원의 뉴스레터 ‘길’지에 게재된 회원의 에세이를 게시하겠습니다.

한국분석심리학회 홈페이지가 인터넷의 바다에서 분석심리학의 기본을 담은 배가 되기를 바랍니다.

– 한국분석심리학회 홍보이사 정찬승

논문 발표: “선사시대 원시인의 재난과 대처양식에 대한 분석심리학적 연구 : 신화와 암각화를 중심으로”. 心性硏究 제32권 제2호

한국분석심리학회 학술지 ‘심성연구’ 제32권 2호에 논문 “선사시대 원시인의 재난과 대처양식에 대한 분석심리학적 연구 : 신화와 암각화를 중심으로”를 발표했습니다.

선사시대 원시인의 재난과 대처양식에 대한 분석심리학적 연구 : 신화와 암각화를 중심으로
Disaster : Concepts and Responses in Prehistoric Times from the Viewpoint of Analytical Psychology

선사시대 원시인의 재난과 대처양식에 대한 분석심리학적 연구: 신화와 암각화를 중심으로

정찬승

국문초록

재난(災難)은 외면적으로는 인간과 사회에 감당하기 힘든 피해를 주는 엄청난 사건이며, 내면적으로는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온갖 종류의 개인적, 집단적 콤플렉스들을 자극한다. 2014년 세월호 침몰 사고는 많은 인명이 갑자기 사망한 인재이며, 대한민국뿐 아니라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큰 심리적 충격을 받았다. 저자는 이 사고의 재난정신건강지원에 직접 참여하면서, 현대 기술 문명의 발달에 대한 자만심이 무너지고 거대한 슬픔과 무력감에 빠진 사람들을 만나는 과정에서 의식적, 무의식적 반응들을 분석심리학적 관점에서 고찰하고 연구해야 할 필요성을 실감했다.
본 연구는 신화와 암각화를 중심으로 선사시대 인간의 재난에 대한 관념과 대처양식을 조사하여, 그 속에 나타난 보편적, 원초적, 원형적 인간 심성과 문화적 특수성을 찾아내고 그 의미와 지혜를 발견하여 현대의 재난대응의 문제점과 개선의 방향을 고찰하고자 한다.
세계 도처의 창세신화들은 태초에 우주적 창조의 일부로서 재난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인류는 선사시대로부터 세계의 주기적 경신(更新)이라는 파괴와 창조의 양면성의 관념에서 재난을 이해하고 대처했으며, 금기의 위반이 재난을 일으킨다는 관념을 갖고 있었다. 재난은 외견상 파괴적 작용을 통해서 의식의 근본적 경신(更新)을 지향하는 ‘자기(Self)’의 의도로 해석할 수 있다. 재난이라는 정신적 위기 상황에서 행해진 다양한 의례는 무의식과의 소통을 통해 인간 의식을 새롭게 하고, 전체 정신의 조화를 추구하는 정신적 재생의 기회가 됐다.
현대 사회는 재난대응에 있어서 외면적, 기술적, 행정적 대응에만 치중한 나머지 고통받는 인간의 심성과 내면적 대처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다. 우리는 재난의 발생을 결정할 수는 없지만, 재난의 대처방식을 결정할 수는 있다. 외면적 재난대응을 힘써 발달시킴과 동시에, 재난의 의미를 성찰하여 인간의 심성을 살피는 내면적 재난대응을 함으로써 인간은 재난을 통해 고통의 의미를 발견하고 성숙의 길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중심 단어: 재난, 신화, 암각화, 선사시대, 분석심리학

ABSTRACT

Disaster: Concepts and Responses in Prehistoric Times
from the Viewpoint of Analytical Psychology

Chan-Seung Chung, M.D., Ph.D.

Disaster is externally an incident that causes enormous damage to society and humanity. Disaster also internally stimulate a variety of personal and collective complexes in the human mind. The sinking of Sewol Ferry in 2014 was a disaster that took away countless lives. People not only in South Korea but around the world were deeply affected by the incident. While directly taking part in disaster mental health support and meeting with people who were sunk in sorrow and helplessness and feeling the collapse of conceit against modern technological civilization, I realised the need to conduct study and research on the conscious and unconscious response from the viewpoint of analytical psychology.
This research investigates the response and management of disaster in prehistoric times mainly through myths and petroglyphs. This study aims to consider the problems and improvements of disaster response in the modern times by finding the distinct cultural characteristics and the universal, fundamental, and archetypal human nature inherent in the concepts of disaster and responses to disaster and discovering their meaning and wisdom.
Creation myths around the world show that in the beginning there was a disaster as part of the universal creation. Humanity has understood disaster as a periodic renewal of the world by the oppositeness between destruction and creation and had the idea that violation of taboo to be the cause of disaster since prehistoric times. Disaster could be interpreted as the intention of the Self that renews the fundamental consciousness through the externally appearing destructive action.
Various rituals performed by man on earth renovates the human consciousness during a mental crisis situation, such as a disaster, and corresponds with the unconscious to create an opportunity for psychological regeneration that seeks harmony.
Modern society has neglected the importance of internal dealing and the suffering human soul and concentrated on the external, technological and administrative actions related with disaster response. We cannot determine the occurrence of a disaster, but we can determine how to deal with the disaster. While developing external disaster response, we need to ponder on the meaning of disaster and conduct internal disaster response that care for human mind. Through this, we will understand the meaning of pain and have renewed mature psyche.

KEY WORDS: Disaster, Myth, Petroglyphs, Prehistoric Times, Analytical Psychology

10월 21일: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추계학술대회 강연 “의료의 영역을 넘어서는 정신치료의 세계: 인격의 성숙”

2017년 10월 21일 토요일 경주에서 열린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추계학술대회에서 개최한 “상담을 원하는 국민이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에게 질 높은 상담을 받게 하기 위한 정책” 토론회에서 “의료의 영역을 넘어서는 정신치료의 세계: 인격의 성숙” 제하의 강연을 했습니다.

다음은 초록(Abstract)의 내용입니다.

의료의 영역을 넘어서는 정신치료의 세계: 인격의 성숙

현재 한국의 정신건강은 정신질환의 유병률과 자살률의 증가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이에 정신건강 증진의 일선에 서있는 최고의 전문가 집단인 정신건강의학과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정신치료에 대한 현행의 비현실적이고 획일적인 저수가 제도는 정신건강의학과 진료 형태를 왜곡시켜서 개인에 대한 충분한 진료와 상담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를 개선하고자 하는 시도는 무엇보다도 국민의 정신건강 증진을 최우선 목표로 하여 현재 활발히 활동 중인 정신치료를 연구, 수련, 실시하는 여러 학파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이다. 실질적으로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일대일로 깊이 있게 분석적 태도와 기법을 적용하여 치료하는 행위’에 대한 가치의 정당성을 인정받아야 한다.

정신치료는 창안될 당시부터 철저히 두 개인 간의 계약에 기반해서 이루어져 왔다. 이 계약 과정 자체가 치료의 중요한 요소이며, 전체 과정에서 치료적인 인자로 작용한다는 것도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므로, 정신치료를 집단적이고 획일적인 제도하에 두는 것은 학술적으로도, 치료적으로도 부적절하다.

인간 정신의 심층을 다루는 융 학파의 견지에서 분석대상은 ‘병’이나 ‘환자’가 아닌 한  개인의 존재, ‘그 사람 Person’이다. 분석은 우울증, 불안장애 등의 특정 질병의 치료를 목적으로 하기보다는 분석을 받는 사람의 자기실현을 통해 보다 성숙한 정신성을 획득하는 데 목적을 둔다. 이는 분석이 정신병리의 범주 안에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 분석을 받는 피분석자의 전체 인격을 대상으로 함을 의미한다.

분석은 의학적 치료를 넘어서 그 개인이 자신의 전체가 되도록 무의식을 의식에 동화시키는 작업이다. 이것은 전통적인 체계적 임상진단, 적응증, 금기, 예후 등의 의학적 접근방식을 버리고 철저히 분석대상 개인의 의식, 무의식에 맞추어 개별적으로 접근하는 과정이다. 실제로 신의 본질을 탐구하는 종교인, 창조성을 찾고자 하는 예술가, 삶의 의미를 고민하는 젊은이, 생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노인들이 분석을 받고 있다. 이들을 환자로 지칭하거나 분석을 제도적 의료행위로 국한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현행의 법과 제도는 불완전하며 끊임없는 개선이 요구된다. 획일적인 제도는 자율성을 강조하는 정신치료의 영역을 크게 훼손시킬 우려가 있다. 모든 정신치료에 있어서 고유한 존재로서의 개인의 가치를 최우선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나의 분석심리학 입문기

의과대학 시절 처음 분석심리학 이론을 접할 때는 그리 큰 흥미를 갖지 못했다. 하지만, 병원 실습 기간 중에 분석심리학회의 주최로 서울아산병원에서 열린 기초강좌에 참석하여 큰 충격을 받았다. 특히 이부영 선생님과 이죽내 선생님의 강의가 지금도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어떤 충격이었을까? 이전에는 들어보지 못한 인간의 정신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이 있었다. 내가 어렴풋이 느껴오던 무언가와 일치되는 느낌이 들었다. 정체되어 있던 마음이 활력을 얻게 되었고, 분석심리학에 대한 매력을 느꼈다. 이 모든 느낌은 젊은 시절의 회상이지만, 그 당시의 지적 흥분과 고양된 감정의 경험만큼은 지금도 확실히 남아 있다. 게다가 정신과 실습이 시작되고 보니 당시 주임교수로 계시던 연병길 선생님께서 분석심리학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지고 제자들을 가르치고 계셨다. 마음의 구조를 멋진 그림으로 그려서 알려주시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당시에는 ‘정신과 의사라면 분석심리학은 기본으로 알고 있구나.’ 하는 오해까지 하게 되었다.

여러 가지 방식이 있겠지만, 내가 수련을 받은 병원에서는 정신과 전공의가 되면 처음에는 정신분열병이나 양극성 정동장애에 해당하는 환자의 진료를 맡고 배우기 시작한다. 그런데, 수련의로서 첫해가 끝나갈 무렵 담당하게 된 환자는 약물치료보다도 집중적인 정신치료를 필요로 했다. 나는 자신이 없었다. 그런 내 심정을 알아보신 연병길 선생님께서 직접 정신치료 지도를 해줄 테니 열심히 해보라고 말씀해주셨다. 진지하게 정신치료에 임했고, 환자의 꿈과 연상도 수집했다. 열정은 높았지만, 실수투성이인 시간들이었다. 그런데, 놀라운 사건은 정신치료 지도 시간에 일어났다. 선생님과 토론을 하다 보니 내가 그토록 곤란함을 느끼고 어찌할 바를 모르던 환자의 현실의 문제와 꿈이 의미 있는 맥락으로 이해되기 시작했다. 요즘도 학회나 공개강좌 때 자주 나오는 질문 중 하나이지만, 그 당시에도 분석심리학이 임상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적용되는지가 모호했다. 하지만, 이해할 수 없었던 환자의 꿈속에 그림자와 아니무스들이 나타나는 것을 보고 어렴풋이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그에 더해 치료자의 자세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다. 환자의 정신치료에 대한 지도이면서도 자신의 치료자로서의 자세와 인간의 정신과 고통에 대한 자세를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후에도 여러 환자들의 정신치료를 지속하는 가운데, 분석심리학적 접근이 결코 모호한 것이 아니라 임상 실제에서 나타나는 정신현상에 대한 경험적인 학문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분석심리학파에서는 치료자 자신이 피분석자로서의 경험을 쌓아야 함을 강조한다. 오랜 기간 철저한 수련 없이 꿈을 해석하는 것을 심각하게 경계하고 있다. 끝을 알 수 없는 심오한 무의식에 대한 경험과 수련이 없는 상태에서의 섣부른 해석은 잘못된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고, 잘못된 해석은 환자나 치료자에게 오히려 해를 끼치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환자에게 꿈의 해석을 해주지 않아도 깊은 관심을 보이니 꿈속에 나타나는 상들이 변화되고 정신적 통합으로의 방향을 향해가며, 그러한 변화 중에 환자의 증상도 호전되는 것을 직접 경험한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한국융연구원에서 열린 전공의 교육 워크숍에서 케이스를 발표하며 한오수 선생님의 지도를 받기도 했다. 그래도 여전히 분석심리학은 어려운 학문이었다. 직접적인 경험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나 자신의 무의식을 체험하고 싶다는 소망이 강해져 연병길 선생님의 소개로 이부영 선생님으로부터 분석을 받기 시작했다. 그것은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사건이었다. 내 의식이 변화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내 개인적인 경험과 관련된 개인적 무의식과 더불어 내 경험과 연관을 지을 수 없고 오히려 인류의 보편적인 정신에 속하는 집단적 무의식을 체험하기 시작했다. 무의식은 나에게 크고 작은 메시지와 과제를 주었다. 내 의식의 일방성에 대한 무의식의 반응을 이제 의식의 자아가 통합해야 했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나타나 나를 괴롭히는 그림자들, 온갖 매혹과 알 수 없는 메시지를 던지는 아니마들, 어마어마한 충격으로 나타나는 여러 원형상들, ‘전체’의 감동을 전해주는 자기의 상(image)들은 분석을 통하지 않고는 결코 헤아릴 수 없는 무의식의 놀라운 메시지들이다.

무의식에 대한 경험이 가져온 내 삶의 변화는 수 없이 많고 크다. 허공을 맴돌며 부유하는 것 같던 나의 삶이 현실의 터전에 뿌리박고 설 수 있게 되었으며, 가족의 갈등이 해결되었고, 후손을 낳고 기르는 일을 기쁘게 받아들이게 되었고, 생기를 잃어가던 종교적인 태도에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완결과는 거리가 멀다. 여전히 진행되고 있고 새로운 변화를 기다리고 있는 과정의 일부다. 무엇보다도 내 삶이 페르조나의 허상들을 좇지 않고 중심을 향해갈 수 있는 동력을 얻게 되었다.

2004년에 분석을 받던 중에 강렬한 꿈을 꾸게 되었다.

“… 어떤 여자의 집이었다. 그녀는 아름답고 고상한 여자였지만, 얼마 전에 병으로 죽었다. 그리고, 그녀가 사랑했던 한 남자에게 그 집을 맡겼다. 그 남자는 하반신을 쓰지 못하는 불구였으며, 체구가 아주 컸고, 휠체어를 타고 다녔다. 집을 관리하며 지냈다. 슬픈 모습이었다. 그는 성실하게 집을 돌보았다. …

새벽녘의 바닷가, 절벽에 커다란 바위들이 있었고, 큰 파도가 바위를 때렸다. 적막하고 광활한 풍경이었으며, 파도 소리만 들렸다. 다리를 쓰지 못하는 큰 몸집의 사내가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 있었다. 사내는 큰 바위에 올라서서 그녀의 뒤에서 팔을 잡고 벌려주었다. 그녀는 팔을 벌리고 서 있다가 흰머리 독수리로 변했다. 새로운 태양이 떠오르며 그들을 비추었다. …”

샤머니즘에서 독수리는 영혼의 인도자로, 고통을 경험하고 쓰러진 샤먼을 저승으로 인도하고 영혼의 세계를 경험하도록 도와준 뒤 땅으로 데려온다. 그러한 과정을 거쳐 이승과 저승의 경험, 죽음과 재생을 통과한 한 명의 샤먼이 탄생하게 된다. 알 수 없는 여성과 독수리는 알 수 없는 세계인 무의식으로 인도해주는 무의식의 원형상이었다. 특히 독수리의 상징에 대한 확충을 하는 가운데, 명확한 한 마디로 환원할 수 없는,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큰 의미가 가슴으로 밀려들어 왔다. 이 꿈을 꾼 후 나는 무의식에 대한 더 깊은 탐구를 하고자 하는 마음이 들었고, 분석심리학 수련을 받기로 결심하게 되었다.

나는 몇 번인가 융을 만난 적이 있다. 우스갯소리 같지만, 꿈속에서 융을 만났다. 융은 엉뚱한 모습으로 산책을 하기도 하고, 열띤 논쟁으로 오히려 이중의 의미를 전달하기도 했다. 인상적이었던 꿈은 그가 동양인과 서양인 사이의 특수성과 인류의 보편성에 대해 어떤 학자와 논쟁하던 모습이다. 꿈속의 융은 종종 생각하고 고민할 거리들을 안겨 준다. 집단적 무의식에 대해, 또는 분석심리학 자체에 대해 근본을 돌아보도록 한다. 한 번은 융의 서재에서 당시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책을 보기도 했다. 나는 서가에 ‘홀로코스트 크리스마스’라는 제목의 책이 꽂혀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성탄절이 얼마 남지 않은 날, 잠에서 깨고 나서 그 의미를 알 수 없어 한참을 생각해야 했다. ‘온 땅의 축복인 예수님의 탄생일이 왜 끔찍한 홀로코스트와 나란히 적혀 있어야 하나?’ 그런 의문은 당시에 헤롯왕이 자행한 끔찍한 영아 살해가 떠오르며 해결되었다. 구원과 죽음의 양면성이 동시에 드러난 결정적인 장면이었다. 이 주제는 니콜라 푸생(Nicolas Poussin), 피테르 브뤼헐(Pieter Bruegel), 귀도 레니(Guido Reni) 등 여러 화가들에 의해서 작품으로 그려지기도 했다. 당시 활력을 잃고 있던 나의 영적 측면은 성탄에 대해, 구원에 대해 새로운 이해와 경험을 하게 되었다.

정신분석을 받고, 분석심리학을 공부하고, 꿈속에서 융을 만나도 항상 되새기게 되는 것은 ‘전체의 중요성’이다. 한쪽 방향만이 아닌 전체를 보는 것은 지금도 어렵고 앞으로도 어려울 것이다. 융의 저서가 아직 난해하게 느껴지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닌가 생각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석심리학에 집중하게 되는 것은 그것이 실제로 내 삶에 변화를 가져오고, 치료자로서의 나의 세계관을 넓고 깊게 만들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원고를 의뢰받고 나서 바로 수락한 것이 몹시 후회가 된다. 회보에 ‘융과 나’를 쓰기에는 나의 경험과 지식이 일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저 분석심리학과의 만남과 이후의 경험의 단편들을 가급적 평이하게 사실 그대로 전달하고자 노력했다. 어떤 독자는 분석을 받는 과정과 변화에 대해 너무 낭만적으로 기술하거나 미화한 것이 아닐까 오해할 수도 있겠다. 실제로는 과장되게 보일까 염려하여, 최대한 축소하고 자제해서 쓰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소중한 내적 경험을 공개하는 것에 대한 내향형의 두려움일 수도 있겠다. 덧붙여, 무슨 학파의 분석가로부터든 정신분석을 받은 사람들의 다수가 인생의 가장 소중한 시절로 그 시기를 회상한다는 사실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혹시라도 분석심리학이나 융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참고라도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하며 글을 마친다.

글쓴이: 정찬승

  • 2010년 한국융연구원의 소식지 ‘길’의 ‘융과 나’ 코너에 투고한 에세이를 일부 수정했습니다. 분석가 수련과정에서 작성한 조심스러우면서도 열정에 찬 글을 다시 읽으니 즐거운 추억에 잠기게 됩니다.  기록을 보존하기 위해 여기 남겨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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