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6월 9일: “갑질의 정신분석: 권력 콤플렉스의 문제” 강연 (코로나 블루로 인한 서울시민의 우울과 자살예방을 위한 3차 Webinar)

I. 들어가는 말

소위 ‘갑질’이란 우위에 있는 자가 열위에 있는 자에게 부당한 권력을 악랄하게 행사하는 행태를 칭한다. 통상 계약의 당사자를 순서대로 갑(甲), 을(乙)로 지칭하여, 우위인 측을 갑이라 하고 상대방을 을이라 한다. 갑과 을이 계약을 맺음으로써 갑을관계가 형성되는데, 최근 들어서 갑을관계는 지위, 계급의 고하(高下)를 표현하게 되어서 현재는 대기업과 협력업체, 업주와 종업원, 상사와 부하직원, 고객과 서비스업 종사자, 교수와 제자 등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 소위 ‘갑질’이란 갑을관계의 ‘갑’에, 좋지 않은 행위를 비하하는 접미사인 ‘질’을 결합한 말로서, 권력을 가진 자가 약자에게 행하는 부당행위를 지적하여 비난하는 유행어라고 볼 수 있다.

연일 뉴스와 인터넷 매체들을 통해 갑질의 사례가 전해져 국민들의 공분을 사고  있으며, 정신건강의학과 진료실에는 ‘갑질을 당했다’는 사람들이 빈번히 마음의 고통을 호소하여 상담과 치료를 받고 있다. 개인의 마음의 고통은 시대의 문제와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시대의 문제가 개인을 아프게 할 때, 마음을 치료하는 의사로서 ‘갑질’ 현상에 대해서 심리학적으로 이해해야 할 필요성을 실감하게 됐다. 갑질에 대해 심리학적으로 고찰하려고 할 때, 그 시대의 다수의 구성원이 공감하고 공유하는 유행어에는 집단 의식(collective consciousness)이 반영되며, 또한 그 기저에는 각 개인의 개인적 무의식과 집단적 무의식이 관련되어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

필자는 소위 ‘갑질’로 불리는 사회현상에 대해 임상에서 경험한 사례들을 고려하여 분석심리학적 관점에서 의식과 무의식의 차원에서 이해하여 갑질이 발생하는 원인과 그 부정적인 영향을 해결할 방안을 모색하고자 한다.

II. 갑질의 사례와 유형

임상경험을 통해 만나는 갑질의 사례는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지속적으로 약자를 얕잡아 보고 힘과 권력을 이용해 부당한 행위를 반복하는 상습적인 갑질이다. 둘째는 평소 평등한 관계를 유지해 오던 사람이 특정한 상황에서 돌변하여 부당한 권력을 휘두르려 하는 우발적인 갑질이다.

1. 상습적 갑질

상습적으로 갑질을 하는 자는 대부분의 인간관계, 사회적 상황에서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 약자를 굴복시키고 조종하려는 성향을 보인다. 공격적이며 오만하고 거들먹거리는 태도가 몸에 배어 있고 타인이 복종하고 굴복할 때 만족감을 느낀다.

사례 A

대기업 브랜드의 하청을 받아 십여 년간 제조공장을 운영하던 A 사장은 적극적이고 활기찬 사람이다. 그러나 본사의 담당 팀장이 매출 하락을 이유로 A 사장에게 일방적으로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A 사장이 자초지종을 물었으나 본사의 팀장은 무례한 태도와 인격적인 모욕을 서슴지 않았다. A 사장은 본사의 매출 하락에 따른 계약 해지에 대해 납득은 했으나 담당 팀장의 안하무인의 빈정거리는 태도에 큰 충격을 받았다. A 사장은 분노에 휩싸였으나 점차 불안, 우울, 무기력에 빠져들고 밤에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죽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사례 B

새로 임용된 젊은 여자 교사인 B는 최근 심한 우울감에 빠져들었다. 가라앉은 기분과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 젖어서 출근을 해도 아이들을 가르치거나 정상적인 업무를 할 수 없었다. 꿈꾸던 교직이 하나도 즐겁지 않았고, 집중력이 전혀 발휘되지 않았고, 문서 작성에서도 실수가 잦아져 더욱 난처해졌다. B는 남자 교장으로부터 ‘시집은 언제 갈 거냐? 시집이나 빨리 가라’ ‘여자는 이래서 안 된다’ ‘그거 하나 제대로 못 하나?’는 등의 모욕과 비난을 들어왔다.

사례 C

중년이 된 C는 때때로 심한 우울감을 느끼고 아무런 의욕이 없어지는 상태가 되곤 한다. 그럴 때면 대학원 시절 지도교수와의 일이 떠오른다. 연구보다는 보직 등 권력에 관심이 많은 지도교수는 겉으로는 매우 신사적인 사람이었지만 내부에서는 권위적인 태도로 제자들을 착취했다. C는 어려운 가정환경에서도 학자로서의 미래를 꿈꾸며 힘든 과정을 견뎌냈다. 어느 날 지도교수와의 면담에서 지도교수로부터 모멸감을 주는 말투로 ‘천한 것들에게 잘해줘 봤자 은혜를 모른다.’는 말과 함께 학위를 줄 생각이 없다는 말을 들었다. C는 그동안 이용만 당했다는 억울함과 어려운 형편에도 최선을 다했던 그간의 열정이 무너져내리는 충격을 받았다. 학자로서 성공할 수 있는 다른 길이 없었기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이후에 다른 일을 하고 있지만,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우울감은 삶의 의욕을 꺾어버리곤 했다.

사례 D

공공단체의 팀장인 D는 공황장애와 우울증으로 진료실을 찾아왔다. D는 자신의 사생활도 없이 직장을 위해 헌신해온 매우 성실한 사람이다. 그러나, 1년 전 새로 부임한 상사는 비상식적인 업무지시와 인격적인 모욕, 협박, 막말과 욕설로 직원들을 몰아세웠다. D는 1년간 어떻게든 상사의 지시를 따르려고 했으나, 상사는 일관성 없는 태도로 고성과 욕설, 성적 모욕으로 직원들을 다그쳤다. 상사가 그렇게 한 이유는 직원들이 그 상사와 경쟁하는 위치에 있는 다른 임원에게 충성하고 자신을 우습게 여긴다는 것이었다. D는 더는 버틸 수가 없었고, 불안과 공황발작, 우울감에 시달리다가 자신이 젊음을 바쳐 성장시킨 그 기관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D를 몰아붙인 상사 또한 불면과 불안의 문제를 갖고 있으며 음주 문제 또한 심각했다.

상습적 갑질의 유형에서는 지속적으로 갑질이 일어나기 때문에 피해를 당한 사람은 심리적으로 만성적인 심한 스트레스를 경험하고 치료를 받기에 이르는 경우가 생긴다. 이때의 특징적인 임상양상 중 하나가 심한 무력감에 빠져서 상황을 개선시킬 의욕을 상실한다는 것이다. 상습적인 갑질을 가한 사람은 타인의 심적 고통에 대한 공감능력이 현저히 낮은 점에서 반사회적 인격 특성을, 권력에 몰두하고 자기중심적인 점에서 자기애적 인격 특성을 고려할 만하다. 상습적으로 갑질을 하는 자는 자신의 행동이 문제가 있다는 반성적 인식이 결여되어 있어서 그 행위 자체에 대해 상담을 받으려고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갑질을 당한 사람이 저항하려고 하면 더욱 철저히 비하하고 짓밟으려는 태도를 보인다. 그러나, 자신이 권력의 중심에 서지 못한 경우에는 불안과 우울, 불면 등의 증상을 겪고 치료를 받으러 병원을 찾는 경우가 있다.

2. 우발적 갑질

평소 평등한 인간관계를 맺어오던 사람이, 특정한 상황에서 폭발적으로 힘을 남용하려 하여, 본인과 상대 모두 예상 밖의 상황에 당황하게 된다. 갑질을 하는 상황에서 감정조절이 되지 않아 본인도 불안과 공포에 압도되어 몸을 떠는 등의 신체증상을 나타내기도 한다.

사례 E

상사로부터 심한 모욕과 비난을 들어온 E는 우울증과 공황장애로 치료를 받고 있다. E는 퇴사 후 다른 직장에 취업하게 됐다. 새로운 직장으로 출근한 E는 부하직원들의 태도가 불손하고 자신을 우습게 여기는 것 같아서 몹시 불편했다. E는 자신이 이전 직장에서 상사에게 당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최대한 부하직원들을 인격적으로 대해주려고 노력했으나, 마음이 점점 불편해졌다. 어느 날 E는 부하직원들의 무례한 태도에 마구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르며 비난했고 거칠게 몰아붙였다. 퇴근 후에도 E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고 부하직원들에 대한 분한 마음과 더불어 자신이 그토록 분개해온 이전 상사가 한 짓을 자신이 똑같이 저지른 것 같아 더욱 절망적인 생각이 들었다.

우발적 갑질의 유형에서는 돌발적으로 갑질이 발생한다. 대개 일회성인 경우에 그쳐서 갑질을 한 사람도, 당한 사람도 진료나 상담을 받으러 오는 경우는 드물다. 임상현장에서 관찰할 수 있는 사례는 기존의 정신분석을 받던 사례가 경험하는 것인데, 가해자는 평소에 타인과 평등한 관계를 맺으려고 노력해왔고, 다소 내향적인 사람들인 경우가 많다. 평소 조용하고 소심했던 사람이 갑자기 권력을 잡게 되거나 자신의 지위가 위협받는다는 생각이 들 경우 폭발적으로 분노하고 주위 사람들을 억압하려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주위로부터는 ‘그 사람이 그럴 사람이 아닌데…’ ‘원래 그렇지 않은 사람인데…’라는 말을 듣게 되는 경우가 많다. 본인도 놀라고 흥분해서 후회하거나 부끄러워하는 등 내적 갈등을 겪는다. 갑질을 당한 사람은 돌변한 상대방의 태도에 당혹감을 느끼고 신뢰가 무너지고 실망하게 된다.

III. 갑질의 분석심리학적 이해

– 권력 콤플렉스

상습적이든 우발적이든 갑질을 당한 사람은 압도적인 권력의 공격에 무너져 이후로 의욕과 희망을 잃게 된다. 갑질을 한 사람도 뭔가에 홀린 듯이 화를 쏟아내고 소리를 지른 후 자괴감과 우울, 불안에 빠지는 일이 흔하다. 이것은 모두 자아와 이질적인 어떤 무의식적인 심리적 내용, 즉 콤플렉스에 의해 일어나는 현상이다.

모든 인간은 무의식에 권력 콤플렉스를 갖고 있다. 갑질을 하는 사람은 무의식적인 권력 콤플렉스와 자아를 동일시하거나 권력 콤플렉스에 의해 사로잡힌 상태라고 볼 수 있다. 객관적인 상황 판단을 하기보다는 권력에 의해 모든 것을 판단한다. 특히 권력에 집중할수록 타인과 자신의 감정에 대한 인지가 현저히 떨어진다. 이는 건강한 자아기능을 손상시키고 신경증적인 상태에 처하게 된다. 칼 구스타프 융이 지적한 대로 권력에 대한 집착은 본인이 표현하거나 인식하기를 꺼리고 있는 지독한 열등의식의 과보상인 경우가 많다. 갑질을 하는 자는 그 무의식에 자신도 모르는 심각한 열등의식이 도사리고 있어서 이를 부정하고자 겉으로는 더욱 안하무인의 폭군 행세를 한다. 

– 그림자의 투사

갑질의 상황에서 갑과 을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둘 다 자신을 피해자라고 생각하고 상대방을 비난하는 것을 자주 본다. 갑은 을이 무능하고 게으르고 무책임하다고 비난하며, 을은 갑이 독재적이고 오만하고 폭력적이라고 비난한다. 둘 다 자신이 혐오하는 것을 상대방에게서 보고 비난한다. 이것은 자신의 무의식에 억압된 열등한 인격인 그림자상을 상대방에게 투사하는 현상이다. 투사는 혐오스러운 인격이나 부도덕함이 자신에게는 없고 남에게만 있다고 생각하는 자기방어 수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그림자가 자신의 무의식에 있다는 것을 의식화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준다. 갑은 자신의 감추어진 열등의식을 직시하고 인정해야 하며, 을은 자기 내면에서 발휘되지 못한 채 버려져 있던 권력욕을 발견하고 실현시켜야 한다. 

– 갑질의 목적의미

과연 갑질의 등장이 나쁘기만 한 것인가? 갑질은 앞에서 살펴보았든 ‘힘’을 부당하게 사용하는 것을 비하하는 유행어다. 우리는 갑질이라는 유행어를 통해서 현재 한국 사회에 만연한 불평등을 인식할 기회를 얻었다. 그리고, 상호 간에 그림자 투사를 통해서 각자의 내면에 억압되어 있는 그림자를 인식할 기회가 생겼다.

주목해야 할 것은 갑질의 피해자인 을은 분노에 떨면서도 한없는 무력감에 빠져서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하고 의욕을 잃은 상태가 지속된다는 점이다. 실제 정신분석을 하면 초기에는 갑질을 당한 사람의 꿈에 외상후스트레스장애의 트라우마 재경험 증상에 해당하는 반복적으로 갑질을 당하는 상황이 등장한다. 갑질은 피해자의 마음에 심각한 트라우마를 남긴다. 그러나, 정신분석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공격적이고 가학적이기만 했던 꿈속의 갑이 손을 내밀어 화해와 협력을 청해 오는 경우가 있다. 이를 계기로 피분석자는 기력을 회복하고 삶에 적극적으로 뛰어든다. 이는 자신의 무의식의 그림자와 권력 콤플렉스를 의식화하는 작업과 관계가 있다. 이것은 소심하고 무력한 자에게 자신의 무의식의 힘을 의식화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 병적 세계관의 개선

갑질은 기본적으로 독재자나 폭군과 같은 권력의 오남용이다. 권력의 우위에 있는 자는 당연히 이런 갑질을 해도 된다고 생각하고, 열세에 있는 자는 자신이 당해야만 할 뿐 다른 방법은 없다는 무력감에 젖어 있다. 여기에는 지위고하에 대한 뿌리 깊은 계급의식이 내재해 있다. 집단이 구분하는 계급만 보일 뿐 각각의 개인의 고유한 존재는 보이지 않는다. 또한, 한국 근현대사의 일제강점과 한국전쟁, 군부독재라는 오랜 수난이 한국인의 마음속에 남긴 악영향이 있다. 정신적 가치와 인간 존중의 전통은 땅에 떨어지고 오로지 권력만을 추구하는 행태가 사회 곳곳을 병들게 했다.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는 평등의식이 결여되었을 때 갑질이 나온다. 현대의 갑질은 무엇보다도 돈과 관계가 깊다. 돈은 권력의 다른 이름이다. 현대의 배금주의적인 문화의 개선이 시급히 요구된다. 

호프만슈탈의 희곡 예더만(Jedermann, 1911)은 오만한 부자 예더만이 불시에 찾아온 죽음의 신에 끌려가게 되자 돈과 권력에 취해 수치심을 모르고 살아온 인생을 반성하는 줄거리다. 예더만이 그토록 자신만만하게 주무르던 ‘재물’에게 죽음의 길로 동행해달라고 청하자 재물이 던지는 냉소는 현대인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재물이 예더만에게)
바보 같으니라고. 자넨 초라한 얼간이, 지독한 바보야. 
예더만, 생각해 봐. 
난 이 세상에 남아 있지만 자넨 어디에 남는가?
내가 자네 마음속에 찔러 넣어둔 것이 있어. 
자넨 그걸 위해 일했지. 
그건 사치와 겉치레, 자만과 허풍, 
그리고 저주스러운 음탕함이지. 
이 모든 것들을 내가 자네에게 불어넣었지. 
자네가 지금껏 고집을 꺾지 않고 
사지를 다 뻗은 채 땅바닥에 지쳐 나동그라지지 않고 
여전히 목을 쳐들고 있게 해준 것은, 
오로지 돈과 재산 덕분이지. 
자네의 모든 용기는 바로 이곳에서 솟아오르는 거야. 
보게, 돈이 다시 돈궤 속으로 떨어져 가는군. 
이것으로 자네 행복은 끝장이야. 
이제 곧 자네 의식도 사라져 버릴 거야. 
두 번 다시 나를 만나는 일은 없을 거야. 
이 속세에 있는 동안만 자네에게 나를 빌려주었던 거야. 
그러니 나는 자네가 가는 길을 함께 가지는 않아. 
가지 않고 이곳에 남아, 자네가 외톨이로 
완전히 벌거숭이가 되어 고난에 빠지도록 내버려 둘 테야. 
자네가 손을 내밀어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아. 
이를 갈고, 이를 드러내도 아무런 소용이 없어. 
자넨 어머니의 배 속에서 나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벌거숭이가 되어서 무덤 속으로 들어가는 거야. 
(Hugo Von Hofmannsthal 저, 곽복록 역, 호프만스탈, 예더만, 지식공작소 중 일부 수정 인용)

– 갑과 을을 넘어서

갑질은 사회적 문제로서 올바른 평등의식을 심어주는 교육을 통해 우선 해결해야 한다. 계급의식을 버리고, 약자를 배려하며, 각 개인의 개성과 존엄성을 존중하는 교육, 힘을 적절하게 사용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힘은 남을 착취하고 억압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인생을 개척하고 이웃을 돕기 위한 것임을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다. 

갑질에 대한 사회적 반성과 제도적 근절 대책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갑질을 멸시하고 금기시하는 집단적 대책만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우리는 갑질 문제를 기회로 삼아 모든 사람의 심성에 깃들어 있는 무의식의 힘, 권력 콤플렉스를 발견하고 그것을 건강하게 의식화해야 한다. 

고유한 개인으로서의 인간은 갑과 을이라는 이분법으로 구분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페르소나에 불과한 갑 또는 을에 자신을 전적으로 동일시할 경우 심각한 신경증이 발생한다. 많은 한국인이 자신을 을로서 피해자라고 생각하여 갑질이라는 유행어가 탄생했지만, 피해의식에 사로잡히면 모든 인간관계를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구도로 왜곡하게 된다. 모든 인간의 내면에는 갑과 을이 공존한다. 이를 인식하여 자신의 힘과 권력을 건강하게 발휘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누군가가 마음의 치료를 받고자 할 때 그는 단지 ‘갑질’ 등 하나의 문제만이 아니라 자신의 인생 전체를 가지고 치료자 앞에 마주 앉는다. 갑질은 하나의 계기일 뿐이다. 부모와의 갈등, 워커홀릭으로 자신을 잃어버린 생활, 뿌리 깊은 열등감, 과거 상실의 반복 등 모든 개인적 과거사와 함께 ‘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하는 인생의 문제가 펼쳐진다. 

그런 사람을 갑과 을 중에 하나로 규정하는 것은 그 사람의 내적 가능성을 제한하는 것이다. 치료자는 그의 무의식에 접근하여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의식의 범위를 확장시켜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도록 해주어야 한다. 을의 마음속에 갑이, 갑의 마음속에 을이 숨어 있음을 발견하는 것은 무척 고통스럽고 피하고 싶은 일이지만, 그림자를 외면하고 타인에게서만 그것을 찾으려고 하는 이상 우리는 상호비방과 증오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림자를 직면하고 의식화할 때 그는 갑과 을의 종속관계를 뛰어넘어 독립적인 온전한 인격체가 될 수 있다.

코로나 블루로 인한 서울시민의 우울과 자살예방을 위한 3차 Webinar 
발표일: 2020년 6월 9일
발표자: 정찬승
주최 : 서울시 자살예방센터, 서울시 COVID19 심리지원단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사례의 성별, 직업 등은 임의로 변경하였습니다.
코로나 블루로 인한 서울시민의 우울과 자살예방을 위한 3차 Webinar 에서 발표한 원고입니다. (주최: 서울시자살예방센터, 서울시COVID19심리지원단)
과거 정신강포럼에서 발표한 내용을 수정, 보완했습니다. 

정찬승 (융학파 분석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의학박사)
국제분석심리학회 정회원
대한신경정신의학회·대한정신건강재단 재난정신건강위원회 홍보국장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 홍보위원장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신보건위원회 위원
울산대학교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외래교수
마음드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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