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3 조선일보 칼럼. 재난 속에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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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속에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갑작스럽게 닥친 재난은 우리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긴다. 2024년 12월 29일, 무안공항에서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가 발생했다. 유족과 지인의 고통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고, 정치적 혼란 속에서 지쳐 있던 국민도 깊은 슬픔에 잠겼다. 하지만 사고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많은 시민이 발 벗고 나섰다. 자원봉사자들이 현장으로 달려가 생필품을 챙기고, 따뜻한 음식과 차를 나누며 유족을 위로했다. 스타 셰프가 솜씨를 발휘한 요리를 가져가고, 많은 시민이 선결제를 통해 위로의 마음을 전했다. 재난을 당한 사람에게 온정을 전하는 이런 모습은 우리 사회가 가진 독특한 정(情)의 문화를 잘 보여준다.

2007년 태안 기름 유출 사고 때 어른부터 아이까지 전국에서 123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몰려와 인간띠를 만들고, 기름을 퍼 나르고, 흡착포와 옷가지로 바위에 엉겨붙은 기름을 닦아내며 땅과 바다를 살렸다.

2014년 세월호가 침몰하자 수많은 시민이 사고 현장과 안산으로 달려가 유족을 위로하고 음식과 생필품을 나눴다. 그저 마음이 미어져 현장으로 무작정 달려가 도움이 될 만한 일이면 뭐든지 시켜 달라고 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 공감의 실천은 크나큰 비탄에 빠진 유족에게 견디는 힘이 됐다. 2017년 포항에 큰 지진이 난 직후 여진(餘震)의 공포가 계속되는 상황에서도 엄청난 자원봉사자들이 피해 지역에 찾아가 임시 대피소에서 식사를 나누고 필요한 물품을 기부하며 희망을 전했다.

코로나19 사태에서는 사회적 거리 두기 정책 속에서 새로운 방식의 시민 참여가 이뤄졌다. 코로나 확산 초기에 미처 마스크를 구하지 못한 생면부지의 사람들을 위해 직접 만든 면 마스크를 나누는 캠페인이 전국에서 펼쳐졌다.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돕기 위해 기부금을 모으고, 격리된 사람들에게 응원의 메시지가 이어졌다. 2022년 핼러윈 참사 당시에는 위험천만하고 처참한 현장에 많은 시민이 뛰어들어 생존자를 구조하고 심폐소생술을 펼쳐 생명을 살려냈다. 재난 현장이 주는 엄청난 트라우마에도 오직 위기에 처해있는 사람을 돕고, 살리고 싶다는 우리 마음의 본성이 만들어낸 가슴이 먹먹해지는 장면이다.

모든 재난 시기에 우리는 서로 돕고 공감과 연대를 실천했다. 현대 사회가 아무리 고립되고 단절된 외로움에 빠진 시대라고 하지만, 우리 심성 깊은 곳에는 사람과 사람을 잇는 따뜻한 정이 있다. 정의 문화, 이웃의 아픔을 내 일처럼 여기고 나서서 돕는 심성은 우리 사회가 가진 큰 자산이다. 재난 속에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재난은 사회적 연대로 극복할 수 있다. 애통해하는 사람의 곁을 지켜줌으로써 우리는 서로를 돌보고 위로한다. 그 경험은 우리 모두의 회복과 성숙을 이끌어낸다.

정찬승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이사

“재난 속에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조선일보. 2025년 1월 3일

https://www.chosun.com/opinion/contribution/2025/01/02/EKZY6G56H5AORPLEQRSGHLHP4Q/?fbclid=IwY2xjawQm941leHRuA2FlbQIxMABicmlkETFLdEhDaGpWZXJXd09kZ3Rnc3J0YwZhcHBfaWQQMjIyMDM5MTc4ODIwMDg5MgABHgPcqMs1l_em3Sqwlf3Dm8yjnKdDSVIekb_O3NPM5HJV-G4gxDF0swXVfpFs_aem_xYug1X1Mu9w4CJaKunmyB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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