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분석심리학 입문기

의과대학 시절 처음 분석심리학 이론을 접할 때는 그리 큰 흥미를 갖지 못했다. 하지만, 병원 실습 기간 중에 분석심리학회의 주최로 서울아산병원에서 열린 기초강좌에 참석하여 큰 충격을 받았다. 특히 이부영 선생님과 이죽내 선생님의 강의가 지금도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어떤 충격이었을까? 이전에는 들어보지 못한 인간의 정신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이 있었다. 내가 어렴풋이 느껴오던 무언가와 일치되는 느낌이 들었다. 정체되어 있던 마음이 활력을 얻게 되었고, 분석심리학에 대한 매력을 느꼈다. 이 모든 느낌은 젊은 시절의 회상이지만, 그 당시의 지적 흥분과 고양된 감정의 경험만큼은 지금도 확실히 남아 있다. 게다가 정신과 실습이 시작되고 보니 당시 주임교수로 계시던 연병길 선생님께서 분석심리학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지고 제자들을 가르치고 계셨다. 마음의 구조를 멋진 그림으로 그려서 알려주시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당시에는 ‘정신과 의사라면 분석심리학은 기본으로 알고 있구나.’ 하는 오해까지 하게 되었다.

여러 가지 방식이 있겠지만, 내가 수련을 받은 병원에서는 정신과 전공의가 되면 처음에는 정신분열병이나 양극성 정동장애에 해당하는 환자의 진료를 맡고 배우기 시작한다. 그런데, 수련의로서 첫해가 끝나갈 무렵 담당하게 된 환자는 약물치료보다도 집중적인 정신치료를 필요로 했다. 나는 자신이 없었다. 그런 내 심정을 알아보신 연병길 선생님께서 직접 정신치료 지도를 해줄 테니 열심히 해보라고 말씀해주셨다. 진지하게 정신치료에 임했고, 환자의 꿈과 연상도 수집했다. 열정은 높았지만, 실수투성이인 시간들이었다. 그런데, 놀라운 사건은 정신치료 지도 시간에 일어났다. 선생님과 토론을 하다 보니 내가 그토록 곤란함을 느끼고 어찌할 바를 모르던 환자의 현실의 문제와 꿈이 의미 있는 맥락으로 이해되기 시작했다. 요즘도 학회나 공개강좌 때 자주 나오는 질문 중 하나이지만, 그 당시에도 분석심리학이 임상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적용되는지가 모호했다. 하지만, 이해할 수 없었던 환자의 꿈속에 그림자와 아니무스들이 나타나는 것을 보고 어렴풋이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그에 더해 치료자의 자세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다. 환자의 정신치료에 대한 지도이면서도 자신의 치료자로서의 자세와 인간의 정신과 고통에 대한 자세를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후에도 여러 환자들의 정신치료를 지속하는 가운데, 분석심리학적 접근이 결코 모호한 것이 아니라 임상 실제에서 나타나는 정신현상에 대한 경험적인 학문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분석심리학파에서는 치료자 자신이 피분석자로서의 경험을 쌓아야 함을 강조한다. 오랜 기간 철저한 수련 없이 꿈을 해석하는 것을 심각하게 경계하고 있다. 끝을 알 수 없는 심오한 무의식에 대한 경험과 수련이 없는 상태에서의 섣부른 해석은 잘못된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고, 잘못된 해석은 환자나 치료자에게 오히려 해를 끼치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환자에게 꿈의 해석을 해주지 않아도 깊은 관심을 보이니 꿈속에 나타나는 상들이 변화되고 정신적 통합으로의 방향을 향해가며, 그러한 변화 중에 환자의 증상도 호전되는 것을 직접 경험한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한국융연구원에서 열린 전공의 교육 워크숍에서 케이스를 발표하며 한오수 선생님의 지도를 받기도 했다. 그래도 여전히 분석심리학은 어려운 학문이었다. 직접적인 경험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나 자신의 무의식을 체험하고 싶다는 소망이 강해져 연병길 선생님의 소개로 이부영 선생님으로부터 분석을 받기 시작했다. 그것은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사건이었다. 내 의식이 변화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내 개인적인 경험과 관련된 개인적 무의식과 더불어 내 경험과 연관을 지을 수 없고 오히려 인류의 보편적인 정신에 속하는 집단적 무의식을 체험하기 시작했다. 무의식은 나에게 크고 작은 메시지와 과제를 주었다. 내 의식의 일방성에 대한 무의식의 반응을 이제 의식의 자아가 통합해야 했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나타나 나를 괴롭히는 그림자들, 온갖 매혹과 알 수 없는 메시지를 던지는 아니마들, 어마어마한 충격으로 나타나는 여러 원형상들, ‘전체’의 감동을 전해주는 자기의 상(image)들은 분석을 통하지 않고는 결코 헤아릴 수 없는 무의식의 놀라운 메시지들이다.

무의식에 대한 경험이 가져온 내 삶의 변화는 수 없이 많고 크다. 허공을 맴돌며 부유하는 것 같던 나의 삶이 현실의 터전에 뿌리박고 설 수 있게 되었으며, 가족의 갈등이 해결되었고, 후손을 낳고 기르는 일을 기쁘게 받아들이게 되었고, 생기를 잃어가던 종교적인 태도에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완결과는 거리가 멀다. 여전히 진행되고 있고 새로운 변화를 기다리고 있는 과정의 일부다. 무엇보다도 내 삶이 페르조나의 허상들을 좇지 않고 중심을 향해갈 수 있는 동력을 얻게 되었다.

2004년에 분석을 받던 중에 강렬한 꿈을 꾸게 되었다.

“… 어떤 여자의 집이었다. 그녀는 아름답고 고상한 여자였지만, 얼마 전에 병으로 죽었다. 그리고, 그녀가 사랑했던 한 남자에게 그 집을 맡겼다. 그 남자는 하반신을 쓰지 못하는 불구였으며, 체구가 아주 컸고, 휠체어를 타고 다녔다. 집을 관리하며 지냈다. 슬픈 모습이었다. 그는 성실하게 집을 돌보았다. …

새벽녘의 바닷가, 절벽에 커다란 바위들이 있었고, 큰 파도가 바위를 때렸다. 적막하고 광활한 풍경이었으며, 파도 소리만 들렸다. 다리를 쓰지 못하는 큰 몸집의 사내가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 있었다. 사내는 큰 바위에 올라서서 그녀의 뒤에서 팔을 잡고 벌려주었다. 그녀는 팔을 벌리고 서 있다가 흰머리 독수리로 변했다. 새로운 태양이 떠오르며 그들을 비추었다. …”

샤머니즘에서 독수리는 영혼의 인도자로, 고통을 경험하고 쓰러진 샤먼을 저승으로 인도하고 영혼의 세계를 경험하도록 도와준 뒤 땅으로 데려온다. 그러한 과정을 거쳐 이승과 저승의 경험, 죽음과 재생을 통과한 한 명의 샤먼이 탄생하게 된다. 알 수 없는 여성과 독수리는 알 수 없는 세계인 무의식으로 인도해주는 무의식의 원형상이었다. 특히 독수리의 상징에 대한 확충을 하는 가운데, 명확한 한 마디로 환원할 수 없는,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큰 의미가 가슴으로 밀려들어 왔다. 이 꿈을 꾼 후 나는 무의식에 대한 더 깊은 탐구를 하고자 하는 마음이 들었고, 분석심리학 수련을 받기로 결심하게 되었다.

나는 몇 번인가 융을 만난 적이 있다. 우스갯소리 같지만, 꿈속에서 융을 만났다. 융은 엉뚱한 모습으로 산책을 하기도 하고, 열띤 논쟁으로 오히려 이중의 의미를 전달하기도 했다. 인상적이었던 꿈은 그가 동양인과 서양인 사이의 특수성과 인류의 보편성에 대해 어떤 학자와 논쟁하던 모습이다. 꿈속의 융은 종종 생각하고 고민할 거리들을 안겨 준다. 집단적 무의식에 대해, 또는 분석심리학 자체에 대해 근본을 돌아보도록 한다. 한 번은 융의 서재에서 당시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책을 보기도 했다. 나는 서가에 ‘홀로코스트 크리스마스’라는 제목의 책이 꽂혀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성탄절이 얼마 남지 않은 날, 잠에서 깨고 나서 그 의미를 알 수 없어 한참을 생각해야 했다. ‘온 땅의 축복인 예수님의 탄생일이 왜 끔찍한 홀로코스트와 나란히 적혀 있어야 하나?’ 그런 의문은 당시에 헤롯왕이 자행한 끔찍한 영아 살해가 떠오르며 해결되었다. 구원과 죽음의 양면성이 동시에 드러난 결정적인 장면이었다. 이 주제는 니콜라 푸생(Nicolas Poussin), 피테르 브뤼헐(Pieter Bruegel), 귀도 레니(Guido Reni) 등 여러 화가들에 의해서 작품으로 그려지기도 했다. 당시 활력을 잃고 있던 나의 영적 측면은 성탄에 대해, 구원에 대해 새로운 이해와 경험을 하게 되었다.

정신분석을 받고, 분석심리학을 공부하고, 꿈속에서 융을 만나도 항상 되새기게 되는 것은 ‘전체의 중요성’이다. 한쪽 방향만이 아닌 전체를 보는 것은 지금도 어렵고 앞으로도 어려울 것이다. 융의 저서가 아직 난해하게 느껴지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닌가 생각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석심리학에 집중하게 되는 것은 그것이 실제로 내 삶에 변화를 가져오고, 치료자로서의 나의 세계관을 넓고 깊게 만들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원고를 의뢰받고 나서 바로 수락한 것이 몹시 후회가 된다. 회보에 ‘융과 나’를 쓰기에는 나의 경험과 지식이 일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저 분석심리학과의 만남과 이후의 경험의 단편들을 가급적 평이하게 사실 그대로 전달하고자 노력했다. 어떤 독자는 분석을 받는 과정과 변화에 대해 너무 낭만적으로 기술하거나 미화한 것이 아닐까 오해할 수도 있겠다. 실제로는 과장되게 보일까 염려하여, 최대한 축소하고 자제해서 쓰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소중한 내적 경험을 공개하는 것에 대한 내향형의 두려움일 수도 있겠다. 덧붙여, 무슨 학파의 분석가로부터든 정신분석을 받은 사람들의 다수가 인생의 가장 소중한 시절로 그 시기를 회상한다는 사실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혹시라도 분석심리학이나 융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참고라도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하며 글을 마친다.

글쓴이: 정찬승

  • 2010년 한국융연구원의 소식지 ‘길’의 ‘융과 나’ 코너에 투고한 에세이를 일부 수정했습니다. 분석가 수련과정에서 작성한 조심스러우면서도 열정에 찬 글을 다시 읽으니 즐거운 추억에 잠기게 됩니다.  기록을 보존하기 위해 여기 남겨둡니다.

공부하는 즐거움 (국제학술대회 참석후기)

제 7회 분석심리학과 중국문화 국제학술대회가 2015년 10월 21일부터 23일까지 마카오 시립대학에서 ‘Confronting Collective Trauma: Archetype, Culture and Healing’을 주제로 열렸다. 국제분석심리학회, 국제모래놀이치료학회, 마카오 시립대학, 동방심리분석연구원이 공동 주최하고 마카오 재단에서 후원하는 학술대회였다. 나는 발표를 맡은 이부영 선생님, 이주현 선생님과 함께 학술대회에 참석하고 그동안의 연구 성과를 발표했다.

이번 학술대회 참석의 계기는 20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4년 4월 16일에 발생한 세월호 침몰 사고로 우리나라 국민은 물론이고 세계 각국에서 슬픔과 애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을 포함하여 수많은 정신건강 전문가들이 일선으로 달려가서 감당하기 힘든 압도적인 심리적 트라우마의 치유에 힘을 썼다. 특히 융학파의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은 재난에 대한 심리적 대응의 정책 수립과 현장 지원, 피해자와 유가족에 대한 상담에 자원하여 재난의 현장을 직접 체험했다. 그 과정에서 피해자와 유가족, 일반인, 그리고 치료자들까지 의식과 무의식에 깊은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트라우마 자체의 해결에 더하여 무의식의 콤플렉스의 작용을 연구해야 할 필요성을 절감했다. 이부영 선생님의 지도 아래 김지연 선생님, 이주현 선생님, 그리고 나는 ‘재난과 심혼’ 연구회를 조직하여 2015년 2월 8일 제1차 연구회의를 시작으로 매월 1회 재난과 인간의 심혼에 대한 역사적 자료와 신화, 민담, 꿈 자료 등을 수집하여 분석하는 연구작업을 진행해왔다. 열띤 토론과 지도를 통해 고대로부터 인류가 겪어온 재난의 심리적 의미에 대해 깊이 고찰했으며, 현대의 재난 피해자와 치료자에게 분석심리학적 접근이 큰 가치가 있음을 깨닫게 됐다.

마침 ‘집단적 트라우마’를 주제로 하는 분석심리학 관련 국제학술대회가 열려 연구성과를 종합하여 체계화할 수 있는 기회로 여겨 참석과 발표를 결정했다. 안타깝게도 김지연 선생님은 개인 사정으로 불참했지만, 그간 연구성과를 집약하여 원고를 작성해주셨기에 내가 학술대회에서 대독하는 것으로 했다.

우리 일행은 2015년 10월 20일 인천 국제공항에서 만나 여정에 올랐다. 나는 국제분석심리학회가 주관하는 학술대회에는 처음 참석했지만, 이부영 선생님께서 주요 임원들과 학회의 역사에 대해 사전에 잘 설명해주셔서 흐름을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마카오 공항에 도착하니 마카오 시립대학의 대학원생들이 진행요원으로 나서서 친절히 안내해준 덕에 무사히 학회장을 찾아갔다. 환영연에서는 마카오 시립대학의 총장인 Yan Zexian의 환영사를 시작으로 한국 분석심리학회와 인연이 깊은 Tom Kirsch, Murray Stein 등의 분석가들의 인사가 이어졌다. 한국에 와서 강의한 적이 있는 John Beebe를 포함해 Joe Cambray 등 외국의 분석가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사실 국제분석심리학회에 처음 얼굴을 내민 나와 이주현 선생님으로서는 이런 환대를 기대하기 어려웠으나, 외국의 분석가들의 이부영 선생님에 대한 존경은 대단하여 그 뒤에 서있기만 해도 많은 인사를 받을 수 있었다. 학회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날인 20일의 환영연은 다채로운 공연과 음악, 와인과 다과로 흥이 넘쳤다. 그 행사를 주관한 인물은 마카오 시립대학의 Shen Heyong인데, 분석심리학의 보급과 국제교류에 매우 열성적인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21일 아침의 개회식은 중국다운 으리으리한 음악과 화려한 영상, 귀빈들에게 선사하는 꽃다발로 시작됐다. 학술대회라기보다 축제라고 할만한 흥겨운 개회식이었다. 다음으로 문화적 트라우마, 폭력, 그 치료에 대해 Murray Stein이 강의했고, 역경(易經)에 대한 강의도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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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eventh International Conference of Analytical Psychology and Chinese Culture 개회식

오후에는 국제분석심리학회에서 최초로 수련생들이 발표하는 자리가 ‘The First Students (Routers) Forum of Analytical Psychology and Eastern Culture’로 마련되었다. 나와 이주현 선생님, 그 자리에 참석하지는 못했지만 김지연 선생님이 외국의 다른 수련생들과 함께 발표했다. 세 명의 발표가 한 주제에 걸쳐 이루어진 만큼 큰 제목은 ‘Disaster and Psyche in Korean Culture’로 정했고 3부로 나누었다. 나는 그중 한국의 재난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연구를 ‘part 1. Disaster in Korean Culture in Historical Perspectives’의 제목으로 발표했다. 김지연 선생님은 ‘part 2. Dealing with Disaster in Myths and Folktales – in Search for  Cultural and Archetypal Patterns’을 제목으로 신화와 민담에 나타난 재난의 원형에 대해 정리해주었고 내가 김지연 선생님의 사진을 보여주고 대독했다. 이주현 선생님은 ‘part 3. Experiences of Jungian Psychiatrists in Crisis Intervention on Sewol Ferry Disaster April 16, 2014 – with Special Reference to the Archetypal Constellations in Dreams’를 제목으로 하여 피해자와 유가족, 치료자의 꿈 자료를 수집하여 분석한 내용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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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aster in Korean Culture in Historical Perspectives 강연

세 강연을 마치자 많은 분석가들이 큰 관심을 표시했다. 특히 국제분석심리학회의 현 학회장인 Tom Kelly는 재난 현장에서 정통적인 분석심리학적 접근이 이렇게 훌륭하게 이루어졌고 실질적인 도움이 됐다는 데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했다. 우리나라에 친숙한 San Francisco의 John Beebe는 이주현 선생님과 꿈의 의미에 대해 깊이 토론하며, ‘한국의 동료들이 강연하는 것을 보니 분석심리학의 미래가 밝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극찬하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22일 오전에는 Tom Kirsch가 ‘트라우마 경험과 회상’이라는 제목으로 자신이 체험한 내용을 강연했는데, 출산 과정에서 상완골이 골절된 것으로 시작하여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런던 폭격 현장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일, 여러 가지 암에 걸리고 치료받으며 살아가는 과정에서 여전히 무의식의 메시지에 귀 기울이는 모습이 감명 깊었다. Tom Kirsch는 프로이트가 트라우마 이론을 세웠지만, 융은 트라우마를 그렇게 강조하지 않았다는 점을 거론하며, 자신이 그토록 많은 소위 트라우마 경험을 갖고 있지만, 정작 젊은 시절 분석을 받을 때에 자신의 어린 시절의 충격적인 경험들에 대해 그리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았고 해야 할 필요도 느끼지 못했다고 말했다. 또한 분석가가 된 후에도 피분석자들과 트라우마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되지는 않는다고 했다. Tom Kirsch는 여러 장소와 시기에 겪은 트라우마들이 자신의 내면에 있으며, 그것들이 자신을 다문화적 인간으로 만들었다면서 트라우마의 목적의미에 대해 말했다.

이어서 이부영 선생님이 ‘Neo‐Confucian Concepts of 4 Beginnings and 7 Feelings: A consideration from Jungian Psychology’의 제목으로 사단칠정론(四端七情論)의 분석심리학적 고찰을 강연하셨다. 퇴계와 율곡, 융의 사상을 비교하여 많은 청중들이 그 깊이와 통찰에 큰 감명을 받아서 강연 후 따로 찾아와서 질문을 하고 원고를 받을 수 있는지 요청하는 분석가들이 많았다. 이부영 선생님에 대한 세계 분석가들의 존경심은 그 철저한 학문적 태도와 작업에 있다는 걸 실감했다.

점심시간에는 한국의 참석자들이 모여 마카오의 전망 좋은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며 성공적인 발표를 자축하는 자리를 갖기도 했다. 저녁에는 만찬에 참석하여 세계 각국에서 온 참가자들과 즐거운 대화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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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부영 선생님과 함께

마지막 날인 23일 오전에는 일본의 Toshio Kawai가 ‘Cultural Trauma and Treatment’라는 제목으로 정신분석가인 선친과 그 형제들이 일본의 침략전쟁에서 받은 트라우마에 대해서 장황하게 얘기했다. 나는 그가 동일본 대지진으로 트라우마를 겪은 피해자와의 정신분석 작업을 통해 경험한 내용과 그들의 무의식에 대해 강연하기를 기대했는데, 자신의 이야기도 아닌 선친의 경험과 일본의 침략전쟁에서 자신들을 피해자로서 외부에 표현하려는 태도에 대해 무척 실망했다.

학회 기간 내내 중국의 학생들과 학자들은 대단한 열의를 보이며 강의를 흡수했다. 그들은 중국 내의 정신건강 문제의 심각성과 그 해결책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으며 진지한 태도로 분석심리학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그들보다 분석심리학을 먼저 접하고 연구하게 된 사람으로서 큰 책임감을 느꼈다. 학술대회가 치러지는 동안 주최 측은 강연자와 청중을 위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특히 동시통역을 제공하여 영어가 능통하지 않은 중국의 청중에게 분석심리학을 철저히 교육하고자 하는 의지가 대단함을 느꼈다. 원로 분석가들을 인터뷰하여 시청각 자료를 확보하는 데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나는 중국인들의 순수한 열의에 감동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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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분석심리학회 회장 Tom Kelly(윗줄 왼쪽에서 두 번째), 차기 회장 Marianne Müller(윗줄 가운데)와 함께

학술대회를 모두 마친 후에는 마카오를 둘러보는 기회를 가졌다. 흔히 도박의 도시라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 마카오는 포르투갈의 오랜 식민지로 이색적인 문화와 풍경을 갖고 있는 도시다. 특히 천주교 성지가 곳곳에 있으며, 김대건 신부가 신학생으로 유학을 한 곳이다. 불야성을 이루는 카지노보다도 소박하고 오밀조밀한 거리와 유적이 무척 마음에 드는 도시다.

한적한 카페에 앉아서 이부영 선생님과 학술대회에서 경험한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Tom Kirsch와 Toshio Kawai를 비교하며 후자에 대한 불편한 마음을 얘기했는데, 이부영 선생님의 대답은 의외였다. Toshio Kawai는 자신이 경험한 것을 말해야 했기 때문에 선친과 그 형제들의 트라우마를 얘기한 것이며, 또한 피해자든 가해자든 트라우마에 집착하는데, 정말 그런 게 있느냐는 것이다. 나는 그 말씀을 듣고 마음이 더욱 불편해졌다. 내 콤플렉스를 건드린 것이다. 한참을 곰곰 생각해보니 그것은 내 무의식의 투사 때문에 일어난 감정이었다. 나는 실제로 일본의 침략을 경험하지 않았다. 그것이 내 개인의 트라우마가 될 리가 없었다. 오히려 내 무의식의 파렴치한 가해자와 처량한 피해자의 원형이 일본과 한국에 투사된 것이다. 이 깨달음은 이후에 내 진료와 분석에 큰 도움이 되었다. 피해의식은 사람을 사로잡는 강력한 콤플렉스다. 그 콤플렉스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언제나 가해자와 피해자의 구도로 세상을 왜곡하게 된다. 나는 이 부분이 이번 학술대회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다. 융이 트라우마 심리학, 즉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로 현재의 심리적 고통을 설명하려는 태도를 환원적이고 인과론적인 태도라며 비판했다는 점을 상기하게 됐다. 오히려 현재 그 사람이 겪고 있는 문제가 중요할 수 있다. 트라우마는 비극이지만, 그 안에는 우리를 성숙한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목적의미가 있다. 트라우마의 고통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고통의 의미이며, 치료자는 그것을 발견하도록 도와주는 사람인 것이다.

학술대회에 참석하고 강연하는 일은 무척 부담스럽다. 하지만, 준비하는 과정을 통해서, 그리고 많은 학자들과의 교류를 통해서 새로운 자극과 통찰을 얻을 수 있다. 시적이고 낭만적인 수준의 강연을 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무의식에 대한 진지하고 철저한 탐구의 자세이며 그런 태도를 통해서 우리는 비로소 무의식에 접근할 수 있다. 이번 학술대회 참석은 공부하는 즐거움을 가르쳐준 소중한 기회였다. 바쁘신 와중에도 세심하고 철저하게 연구모임을 지도해주신 이부영 선생님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자 한다.

  • 이 글은 한국융연구원 소식지 ‘길’에 투고한 원고를 일부 수정한 것입니다.

학회명: The Seventh International Conference of Analytical Psychology and Chinese Culture
주제: Confronting Collective Trauma: Archetype, Culture and Healing
일시: Oct. 21 -23, 2015
장소: City University of Macau, Macau, People’s Republic of 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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