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 트라우마 치유를 위한 편지

정찬승
융학파 분석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학교폭력은 아이의 몸과 마음은 물론이요, 사회생활과 아이의 미래까지 심각한 트라우마를 남길 수 있습니다. 폭력을 당한 많은 아이들이 정신건강의학과 진료실에 찾아옵니다. 마음의 상처를 받은 아이는 우울증, 불안증, 공황발작, 공포, 불면증, 함구증, 대인기피, 악몽, 해리증상 등 스트레스 반응 때문에 고통받습니다. 심한 경우에는 혼자 있을 때도 가해학생이 욕설을 뱉는 환청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왜 진작 어른들께 말씀드리지 않았을까?’ ‘왜 그냥 참고만 있었을까?’ ‘그냥 참는 게 더 나았을까?’하는 죄책감과 후회가 머리를 어지럽힙니다.

부모 역시 마음이 아프고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비록 어른이지만 처음 겪는 일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사랑하는 자녀의 일이기에 더욱 마음이 아프고 경황이 없습니다. 여기저기 도움을 청하고 싶지만, 물어볼 곳도 마땅치 않습니다.

이럴 때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할 분은 바로 선생님입니다. 다년간의 교직 경험으로 아이나 부모보다 훨씬 객관적으로 상황을 파악하고 해법을 제시해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학교폭력이 일어난 학급의 선생님 또한 큰 스트레스를 받고 불안과 두려움에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받으러 오는 일도 많습니다. 학교폭력 문제에 경험이 없거나, 이전에 아주 힘든 사례를 맡은 선생님은 지레 겁을 먹습니다. 선생님도 우울증, 불안증, 불면증으로 마음의 고통을 겪습니다.

– 뒤바뀐 피해자와 가해자

학교폭력은 아이와 부모, 교사 모두의 마음을 힘들게 합니다. 이렇게 개인이 감당하기 힘든 고통을 해결해주는 것이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라는 시스템의 역할입니다. 그런데, 실상을 보면 피해학생의 부모가 선생님과 만나면 은근히 ‘피해학생의 학교생활이 더 힘들어질 수 있다.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까지 가기를 정말 원하느냐?’는 질문을 받습니다. ‘심한 처벌의 경우에 가해학생의 생활기록부에 남는다. 정말 그리되면 좋겠냐?’는 말도 듣습니다. 이 부분에서 부모는 교사와 학교를 불신하기 시작합니다. 피해자 측임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번거로워지고 껄끄러워지니 이쯤에서 적당히 멈추라’라는 압력을 느끼는 것입니다.

일부 선생님은 문제가 복잡해지는 것이 싫고 골치 아픈 행정절차를 진행하는 것에 큰 부담을 느낍니다. 게다가 피해학생의 성난 부모가 선생님과 학교를 비난하고 공격한다고 여기기도 합니다. 피해학생과 부모의 분노는 폭력에 대한 당연하고 정상적인 반응인데도 불구하고 어떤 선생님은 이런 부모가 두려워 방어적인 태도를 취해 오히려 가해학생 편을 들거나 그 입장을 대변하기도 합니다. 피해학생를 최우선으로 보호해야 한다는 원칙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행태입니다. 피해학생과 부모가 ‘가해학생이 합당한 처벌을 받기 원한다. 용서와 화해는 그다음 문제다’라고 올바른 말을 해도 어떤 선생님은 ‘가해학생이 아직 어려서 뭘 잘 몰라서 그랬다’ ‘아이들은 아직 배우는 중이니 실수를 한다’라면서 적당히 접는 것이 좋겠다는 암시를 합니다.

어느새 폭력을 당한 피해자 측은 너무 매정한 가해자 취급을 받고, 폭력을 가한 가해자 측은 눈물을 흘리며 머리를 조아리는 피해자 행세를 합니다. 가해학생의 부모는 쉴새 없이 피해학생의 부모에게 연락하고 찾아와서 용서와 화해를 해달라고 애원합니다. 가해학생의 부모는 ‘내 자식이 너무 힘들어한다. 제발 용서하라’며 슬픔과 혼란에 빠진 피해학생의 부모를 비난하고 괴롭힙니다. 집단폭력의 경우 다수의 부모들로부터 걸려오는 전화와 문자메시지는 피해학생 부모에게 견디기 힘든 폭력이고 트라우마입니다. 피해학생과 가해학생을 즉시 분리하는 것이 원칙이듯 양측 부모들도 즉시 분리하고 차단해야 합니다. 피해학생 부모는 어느 누구도 가해학생 부모의 전화를 받거나 대면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피해학생의 부모도 보호받아야 합니다.

– 피해자다움의 강요

선생님은 피해자의 행동과 심리를 잘 이해해야 합니다. 어떤 선생님은 ‘피해학생이 학교에서 잘 놀고 힘들어 보이지 않는다. 가해학생과도 장난을 치고 논다’며 별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말합니다. ‘피해자가 피해자답지 못하다’는 말이죠. 이것은 폭력의 속성에 무지하고 피해학생의 마음에 공감하기를 포기한 끔찍한 언행입니다. 어떤 피해학생은 우울과 불안이 겉으로 다 드러납니다. 하지만, 어떤 피해학생은 전보다 더 밝게 놀고 발표도 많이 합니다. 이것은 깊은 우울과 불안을 감당할 수 없어서 오히려 반대로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 어린이의 미숙한 방어기제입니다. 아이와 조금만 깊이 이야기를 나누어보면 곧 그 아이는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지고 커다란 눈물을 뚝뚝 흘립니다. ‘너무 괴롭고 밤마다 나쁜 꿈을 꾼다’는 말을 그제서야 합니다.

피해학생이 건강한 모습으로 뛰어놀면 마음의 상처를 스스로 치유하려는 그 아이의 노력을 칭찬해주고 더욱 공감해주어야 합니다. 웃는 얼굴에 감추어진 아이의 마음은 여전히 상처투성이입니다. ‘피해학생 같이 안 보인다’ ‘다 괜찮아진 것 같다’는 선생님의 무책임한 말은 아이와 부모에게 너무나 큰 절망과 불신을 줍니다. 폭력 피해자를 대하는 가장 좋은 태도는 공손함과 정중함입니다. 선생님은 피해학생과 부모를 각별히 사려 깊고 진지하게 대해야 합니다. 선생님의 경솔한 언행은 아이와 부모의 트라우마를 더욱 악화시킵니다. 뭐라도 말을 해야 할 것 같다면, ‘어떻게 도와드릴까요?’라고 묻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모든 학교폭력이 이렇게 진행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피해학생과 부모라면 많이 공감할 것입니다.

– 학교폭력 무관용 원칙

잘못된 방향으로 학교폭력 문제가 흘러가는 것은 원칙을 지키지 않기 때문입니다. 학교폭력을 근절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학교폭력 무관용 원칙’입니다. 학교폭력에는 절대로 관용을 베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공정함’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합당한 처분이 내려지기 전에 어른들이 요구하는 화해와 용서에 피해학생이 섣불리 동의하면, 가해학생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활개를 치고 피해학생의 마음속에는 울분이 쌓입니다. 아이의 마음속에 쌓인 울분은 어른들이 만든 ‘불공정함’ 때문입니다. 공정하고 합당한 처벌 이후에 용서와 화해가 가능합니다. 강요된 용서와 화해는 피해학생에 대한 또 다른 폭력입니다. 이것은 피해학생의 마음에 온전히 공감하지 못하는 어른들의 잘못된 인식 때문입니다. 어떤 학교폭력이든 어른 자신을 그 폭력의 피해자라고 상상해보세요. 그러면 아이에게 요구하는 용서와 화해가 얼마나 불공정하고 어이없는 짓인지 짐작이 갈 것입니다.

폭력을 방관하고 묵인하는 관용적 태도는 이제 설 자리를 잃게 되었습니다. 군대에서도 폭력이 사라지고, 회사 내 폭력도 신고 즉시 조치가 취해집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발전입니다. 학교만 하더라도 ‘체벌을 금지하면 교육이 불가능하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학생 체벌 금지가 본격적으로 시행되고 나서 교사가 자행하던 체벌을 가장한 폭력은 설 자리를 잃었습니다. 학교는 점점 밝아지고 건강해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모두 폭력에 대한 무관용 원칙 덕분입니다.

이제 남은 것은 학교폭력입니다. 정부 관계부처가 합동으로 발표한 ‘학교폭력근절 종합대책’은 사소한 괴롭힘도 범죄라는 인식 하에 피해자 보호를 최우선으로 하고 학교폭력이 은폐되지 않도록 철저하게 대응하도록 명시하고 있습니다. 사소한 폭력도 범죄며, 반드시 합당한 처벌을 받는다는 학교폭력 무관용 원칙이 지켜지면, 아이들은 경각심을 갖게 되고 학교폭력 예방효과도 나타날 것입니다. 혼란스러운 교사의 역할도 제자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학교폭력은 수습할 것이 아니라 근절해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철저한 학교폭력 예방교육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 그릇된 동정심

학교폭력을 처리할 때 왜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걸까요? 가해학생과 부모는 반성문과 사과문을 내고 불쌍한 표정으로 동정심에 호소합니다. 다른 어른들이 보기에는 당장 울고 있는 아이를 달래주고픈 마음이 듭니다. 그러나 그릇된 동정심은 가해학생의 교육에도 나쁜 영향을 끼칩니다. 가해학생은 ‘눈물로 위기를 모면할 수 있다’는 요령이 아니라 ‘폭력에 대한 합당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원칙을 배워야 합니다. 그래야만 장래의 폭력을 예방할 수 있습니다. 가해학생과 부모의 불쌍한 표정과 눈물만 보아서는 안 됩니다.

제출한 반성문과 사과문을 자세히 보면 그 영악함에 놀랍니다. ‘나는 장난으로 그런 건데 너에게 그렇게 상처가 되었다니 미안해’ ‘네가 싫다는 말을 하지 않아서 나쁜 행동인 줄 몰랐어’ ‘나는 그 말이 그렇게 나쁜 말인지 몰랐어. 네가 기분 나빴다니 미안해’라는 말로 교묘하게 자신의 폭력 책임을 축소하고 피해학생에게 책임을 떠넘깁니다. 사과문과 반성문이 아니라 핑계문과 변명문입니다. 아이들의 질투와 폭력성은 어른들의 것보다 훨씬 적나라합니다.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상대가 가장 아파할 말과 행동을 알고 있습니다. 불리한 내용을 감춘 교묘한 핑계와 변명은 피해학생에게 2차 가해가 됩니다. 가해학생의 교묘한 변명이 아니라 피해학생의 트라우마가 모든 판단의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교묘한 사과문과 반성문은 학교폭력을 해결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피해학생과 부모는 더욱 분개하고 가해학생 측은 요령껏 빠져나갈 궁리를 하며 사과하는 척, 반성하는 척 연기하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집단폭력의 경우 가해학생들의 부모들이 채팅방을 열고 야합하여 말을 맞추고 사건을 조작하기도 합니다.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입단속을 시키고 반성문과 사과문에 쓸 교묘한 말들을 가르칩니다. 부모들의 이기적인 행동은 가해학생들의 양심을 파괴하고 더 지독한 폭력성을 심어줍니다. 그릇된 동정심에서 나온 그릇된 행태는 아이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를 망칩니다.

진실로 반성하는 가해학생은 진심을 담아, 자신의 잘못을 자세히 쓰고, 책임을 인정하고 처벌을 달게 받겠다는 내용을 써서 진정성 있는 태도를 보입니다. 진심 어린 사과를 해야 피해학생과 부모의 상처를 위로하고 분노를 가라앉힐 수 있습니다.

– 올바른 중립성

선생님과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는 처벌을 요구하는 피해학생 측과 용서를 구하는 가해학생 측 사이에서 고민합니다. 이때 올바로 알아야 할 것이 ‘중립성’의 개념입니다. 어떤 선생님은 ‘피해학생도 가해학생도 모두 내 학생이다’고 말하며 자신은 중립을 지키겠다고 합니다. 중립성을 오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중립성을 ‘피해학생과 가해학생 사이에 정확히 중간에 서서 어느 편도 들지 않겠다’라는 물리적인 중립성으로 오해하면 안 됩니다. 올바른 중립성이란 ‘편견이나 선입견 없이 객관적으로 상황을 파악하는 태도’입니다. 중립성은 자기 자신의 선입견과 편견으로부터의 중립성을 말합니다.

선생님은 가장 상처받고 억울한 피해학생 곁에 서서 보호해주어야 합니다.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 위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피해학생도 돕고, 가해학생도 도와야 한다’는 잘못된 중립성이 아니라, 객관적인 입장에서 적극적으로 피해학생을 돕고 가해학생에게는 합당한 처벌을 내리는 것이 올바른 태도입니다. 학교폭력 사건의 중심은 철저히 피해학생의 트라우마라는 것을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편견과 선입견을 배제한 중립(neutrality)을 지키고, 피해학생의 트라우마에 중심(center)을 두세요.

어른들은 당연히 가해학생의 고통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합니다. 가해학생이 자신이 저지른 폭력에 대한 합당한 처분 때문에 겪는 고통은 그 아이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필요한 고통입니다. 모든 고통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아이가 전혀 고통을 겪지 않기를 바라는 부모의 과보호가 도덕성이 결여된 아이를 만듭니다. 아이가 심각한 폭력을 저질러서 합당한 처분을 받은 경우에도 성적과 입시에 눈이 먼 부모는 ‘생활기록부에 기재되는 처분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며 분노합니다. 성공만능주의에 물든 부모는 아이를 망칩니다. 가해학생의 부모 또한 큰 고통을 겪습니다. 하지만, 합당한 처분을 인정하고 담담히 받아들이는 부모의 태도는 아이를 바른길로 인도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학교 교육의 중심은 입시가 아니라 성숙입니다.

– 트라우마의 이해

때로는 피해학생의 고통을 망각하고 어른을 중심으로 학교폭력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우가 있습니다. 집단폭력이 발생하자 선생님이 가해학생들과 피해학생을 한 테이블에 모아두고 진술서를 쓰라고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가해학생들은 대충 몇 줄 쓰고 나갑니다. 피해학생은 어떨까요? 피해학생은 오랜 기간 집단폭력을 당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진술서에 쓸 말이 잘 생각나지 않습니다. 트라우마 반응 중 해리증상 때문에 정신이 멍하고 집중력이 떨어지고 최근에 겪었던 일이 부분 부분 잘 기억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겉으로는 괜찮아 보여도 속으로는 심각한 트라우마 반응이 진행됩니다. 우울, 불안, 공황발작, 놀람, 해리증상, 공포, 불면증, 야뇨증, 함구증, 대인기피, 등교거부, 죄책감, 분노, 기억상실, 악몽, 해리증상, 환각 등 고통스러운 트라우마 증상이 아이를 괴롭힐 수 있습니다. 트라우마 반응은 즉시 나타나는 경우도 있지만, 한참 지나서 지연된 트라우마 반응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선생님은 아이가 트라우마 상태라는 것을 인지하고 아이를 안전하게 보호해주고 아이가 안정된 것을 확인한 후에 자세한 진술을 받아야 합니다. 이때 특별히 주의를 기울이고 아이를 배려해야 합니다. 진술서를 쓰려면 끔찍한 기억을 떠올려야 하는데 그것이 아이에게는 다시 트라우마가 됩니다.

피해학생의 부모 또한 트라우마를 겪습니다. 학교에서 연락이 오고 가해학생의 부모들이 서둘러 전화를 걸어서 덮어놓고 사과를 받아달라고 합니다. 피해학생의 부모는 갑자기 알게 된 충격적인 사실에 놀람, 충격, 분노, 우울, 불안, 무력감 등의 온갖 감정에 압도당하고 이후로 며칠 동안 일부 기억을 잃어버리기도 합니다. 누가 옆에서 말을 걸어도 얼이 빠진 사람처럼 멍하게 있다가 놀라곤 합니다. 이런 상태는 갑자기 닥친 트라우마에 대한 당연한 반응입니다. 만약 증상이 심하거나 일상생활에 괴로움을 겪는다면 바로 상담과 치료를 받는 것이 좋습니다.

선생님은 피해학생과 부모에게 폭력 사실은 물론이고 트라우마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려주어야 합니다. 아이와 부모는 자신이 겪고 있는 혼란스러운 정신상태가 트라우마 반응이라는 것을 모릅니다. 트라우마에 대해 알려주고 필요한 경우 꼭 상담과 치료를 받으라고 알려줄 사람은 바로 선생님입니다.

선생님 또한 갑자기 벌어진 일에 놀라고 당황합니다. 선생님이 부모와 면담하다가 덜덜 떨며 울음을 터뜨리기도 합니다. 학교 폭력이 발생하면 선생님의 마음건강이 사각지대에 놓일 수 있습니다. 동료 선생님들이 지지와 위로, 도움을 주어 이 상황을 잘 해결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필요한 경우 선생님도 상담과 치료를 받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 피해학생 중심의 해결

학교폭력을 처리할 때 아이의 고통을 외면하고 어른의 편리를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명심해주세요. 가장 괴로운 사람은 피해학생입니다. 모든 순간에 피해학생의 마음을 살피고 공감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까지 소집되는 학교폭력 사건은 피해학생과 가해학생 모두 감당하기 어려운 큰 스트레스입니다. 거짓과 위선이 난무하고 변명과 핑계로 뒤범벅된 해결은 아이들의 마음에 폭력보다 더 깊은 상처를 남깁니다.

원칙이 지켜지지 않거나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의 결론이 부적절하다고 생각될 때, 피해학생 측은 사법체계에 도움을 청하게 되고, 길고 고통스러운 소송이 시작됩니다. 학교와 교사에게 실망하여 이미 화가 날 대로 난 피해학생 측의 공격적인 태도는 가해학생이나 교사에게 큰 부담을 주어 비극적이고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어지는 경우까지 있습니다. 이런 참혹한 사태까지 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어른들이 할 일입니다. 그래서 원칙이 필요하고, 정해진 원칙을 철저히 지켜야 합니다.

학교폭력 해결의 목표는 용서와 화해가 아닙니다. 피해학생의 고통을 외면하고 용서와 화해를 유도하는 것은 아이의 인권을 무시하는 처사입니다. 어른들의 폭력을 생각해보세요. 누구도 피해자에게 가해자를 용서하고 화해하라는 말을 함부로 꺼내지 못합니다. 피해학생과 부모는 겪지 않아도 될, 겪지 말아야 할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도 학업과 직업, 일상에 큰 지장을 받습니다. 폭력에 대한 올바른 해결은 피해자의 울분을 풀어주고 가해자에게 합당한 처벌을 내리는 것이 우선입니다. 합당한 처벌과 진심 어린 사과만이 트라우마를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학교폭력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지를 보고 배웁니다. 피해학생의 부모는 침착하게 아이를 보호하고 공감해주어야 하며 가해학생의 부모는 아이가 합당한 처분을 받아들이고 반성하도록 해야 합니다. 선생님은 아이와 부모가 이런 과정을 잘 헤쳐 나가도록 지도해야 합니다.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가 열리는 것을 꺼리지 말아야 합니다. 폭력에 대한 신고와 처벌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교육해야 합니다. 감추어진 폭력은 더욱 잔악해지기 때문입니다.

학교폭력의 책임을 전적으로 학생들에게 돌릴 수만은 없습니다. 폭력을 행한 학생의 부모는 가정에서의 폭력과 방치가 있었는지, 교사는 학생들을 인격적으로 존중하고 평등하게 대했는지, 사회는 인격의 성숙보다 성공과 권력에만 집착하고 있지 않은지 반성해야 합니다. 학교폭력 가해자를 향한 군중의 가혹한 비난 속에 감추어진 폭력성 또한 반성해야 합니다. 어린이의 문제는 바로 어른의 문제입니다. 우리 모두의 적극적인 노력이 있을 때 학교폭력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치유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폭력에 휘말린 우리 아이들의 마음건강을 지키는 길입니다.

정찬승 (국제공인 융학파 분석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의학박사)
국제분석심리학회 정회원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신보건위원회 상임위원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 홍보위원장
대한신경정신의학회·대한정신건강재단 재난정신건강위원회 홍보국장
울산대학교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외래교수
마음드림의원 원장
http://www.maumdream.com

*학교폭력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선생님, 학부모, 학생을 위해 ‘정신건강의학과 의사가 학교폭력위원회에 보내는 편지’라는 제목으로 정신의학신문에 투고한 글을 일부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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