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선생님도 파업하실 거예요? 그럼 저는 앞으로 어떻게 치료를 받아야 해요? 그동안 의사 선생님들을 존경했는데, 이번에 의사들이 환자를 버리고 파업하는 걸 보고 너무 놀라고 실망했어요.”
공황장애 때문에 치료를 받는 환자가 묻는다. 이전까지 나와 환자는 굳건한 상호 신뢰 관계를 갖고 있었다. 기계를 고치는 것이라면 지식과 기술로 충분하다. 그러나, 의술의 대상은 기계가 아닌 사람이다. 사람의 몸과 마음을 치료하기 위해서 지식과 기술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상호 신뢰 관계다. 이것을 라포(rapport)라고 한다. 라포가 좋으면 치료 경과가 더욱 좋아지며, 라포가 안 좋은 경우 치료가 더디고 불필요한 오해, 분쟁이 일어난다. 이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의사들이 환자를 남겨두고 사표를 내고 병원을 떠나는 일이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 비극적인 사태를 일으킨 것은 일방적으로 의대 정원 증원 계획을 발표한 한국 정부다. 한국은 전국민 건강보험(National Health Insurance, NHI)이라고 하는 국가가 주도하는 보편적 건강보험 체계를 기반으로 하여, 누구나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으나, 최근 들어서 지역 간 의사 수의 불균형, 매우 낮은 의료 수가와 불합리한 의료 사고 소송으로 인한 의사들의 고위험 분야 기피 등의 문제를 겪고 있다. 정부는 2024년 2월 6일 현재 3,058명인 의대 입학 정원을 내년부터 5,058명으로 늘리겠다고 기습적으로 발표했다. 정부가 의료계와의 충분한 협의, 세밀한 사전 조사, 구체적인 계획도 없이 강압적으로 정책을 밀어붙인 탓에 충격과 분노에 휩싸인 의사들이 거리로 나서서 정부를 규탄하고 있다.
미디어에서는 정부 측 인사와 의료계 인사가 나서서 의사가 부족하다, 그렇지 않다면서 열띤 논쟁을 벌이고 있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결론이 아닌 과정이다. 정부는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좌우할 중대한 정책을 발표함에 있어서 다양한 의견을 존중하여 경청하고 토론을 통해 합의에 도달하는 민주주의적 절차를 무시한 채 권위주의적 명령만을 앞세우고 있다. 상호 신뢰 없는 강제적인 정책이 설득력을 가질 수가 없다.
국가에 위기가 닥칠 때마다 의료인은 국민을 위해 헌신했다. 전 세계를 휩쓴 코로나 팬데믹에서도 국민의 건강을 수호하기 위해 자신의 안위와 이득을 내려놓고 희생적으로 봉사한 의사들이 있었기에 우리나라는 코로나19 방역 선진국으로 세계인의 칭송을 받았다. 그렇게 국민의 신뢰를 쌓아온 의사들의 목소리에 귀를 닫고 오직 명령과 강압만 일삼는 정부는 신뢰 관계, 즉 라포의 형성에 있어서는 낙제점이다.
지난한 설득 과정을 무시한 국가 지도자의 강력한 명령은 얼핏 보면 신속하고 효율적인 묘수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후에 남는 것은 인권과 민주주의의 후퇴, 상호 불신, 사회 갈등뿐이다. 무언가를 개선하고자 한다면 신뢰를 쌓는 것이 우선이다. 신뢰를 망가뜨리기는 쉬우나 회복하기는 어렵다. 보건 정책을 아무리 개선하더라도 이번에 손상된 의사-환자 간 신뢰 관계는 쉽게 회복되지 않을 것이다. 신뢰 없이 온전한 치료가 이루어질 수 없다. 의사와 정부의 신뢰 관계는 더욱 처참한 지경이라서 봉합할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도, 정책을 추진하는 정부도 지시하는 입보다 듣는 귀가 우선이다. 경청, 이해, 공감은 개인의 치료에도, 민주국가의 통치에도 가장 중요한 기본이다.
*코리아헤럴드에 실린 영어 칼럼의 한국어 번역입니다.
https://m.koreaherald.com/view.php?ud=20240229050143
[Chung Chan-seung] The collapse of trust: South Korea’s true health care cris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