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사랑을 받고 영광스러운 절정을 누리던 배우 이선균이 사망했다. 처음에는 마약에 대한 온갖 가십이 미디어를 뒤덮었고 사람들 혀끝에 오르내렸다. 대중은 공인의 부도덕함을 손가락질했고, 연예인 마약 수사가 줄을 이었다. 스타를 향한 대중의 사랑은 순식간에 지독한 혐오와 낙인으로 바뀌었고 절망의 끝은 죽음이었다. 과연 그렇게 낙인찍어야만 했을까?
“어떤 마약중독자도 처음부터 소위 약쟁이가 되고 싶었던 사람은 없어요. 술을 마시고 객기를 부리던 젊은 시절에 친한 친구나 좋아하는 선배가 기분 좋아지는 거니 그냥 한번 해보라며 마약을 권했다면 과연 나는 끝까지 거부했을까요? 내가 마약을 하지 않은 이유는 다행히도 내 곁에 마약을 하거나 건네는 사람이 없었을 뿐이에요.” 마약중독 치료의 최고 전문가인 천영훈 원장의 솔직한 이야기에 강당을 가득 메운 고등학생들이 눈을 떼지 못하고 집중했다. 시험과 전혀 무관한 외부 인사 초청 특강 시간에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거나 잡담하는 학생이 한 명도 없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강연을 마치자 질문이 쏟아졌다. “마약을 탄 음료수를 나도 모르게 마셔도 중독되나요?” “대마초가 미국에서는 합법이고 한국에서는 불법인 이유가 뭐예요?” “마약중독 환자에게 어떻게 공감할 수 있어요?”
마약은 이제 부정할 수 없는 중요한 사회 문제가 됐다. 인구 10만명당 마약류 사범의 수를 마약지수라고 하는데, 그 수가 20명이 넘는 사회는 마약을 통제하기 어렵다고 본다. 우리나라는 이미 2015년 마약지수가 20을 넘었고, 작년 전국 19~69세 성인 5000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조사에서는 3.2%가 한 번 이상 마약을 사용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고등학교 강당에서 열린 마약중독 예방 특강에 수능을 마친 고3 학생들이 가장 진지하게 듣고 실제적인 질문을 던진 이유는 어른들이 애써 외면하는 마약 문제가 청소년에게는 이미 현실의 위협이 됐기 때문이다.
마약 문제를 포함한 정신 건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낙인’을 찍지 않아야 한다. 마약에 취해 멍한 표정으로 실실 웃는 사람을 등장시켜서 한 번이라도 마약을 하면 인생 끝이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캠페인은 잘못된 접근법이다. 이미 마약을 사용한 사람들이 그런 캠페인을 보면 무슨 생각을 할까? 이제 다 끝이라고 단정하는 메시지는 마약중독 치료의 희망까지 끝내버린다. 마약중독 예방 캠페인은 혐오와 낙인을 조장할 것이 아니라 마약이 왜 나쁜지, 얼마나 치명적인지 납득할 만한 정보를 전달해야 한다. 사람들의 혐오와 낙인이 커지면 마약중독 문제를 가진 사람들은 점점 음지로 숨는다. 마약을 법으로 금한 것은 마약중독을 예방하여 개인의 건강과 사회의 건전성을 지키기 위한 것이다. 아픈 사람을 나쁜 사람으로 만들어 치료를 어렵게 해서는 안 된다.
훌륭한 배우의 연기를 통해 우리는 고단한 삶의 피로를 잊고 감동하고 전율하며 삶의 의미를 발견한다. 우리 사회에 크나큰 기여를 한 소중한 존재라는 의미에서 배우를 공인(公人)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그를 소중히 지켜주어야 한다. 미디어가 집요하게 캐내야 할 것은 다른 의미의 공인, 권력자의 부패와 비리이지 문화 예술인의 사생활이 아니다. 무분별한 미디어의 선동과 대중의 비뚤어진 호기심은 스타의 파멸을 즐기고 소비한다. 온라인에서 벌어지는 폭력의 잔인함은 사람을 죽인다. 혐오와 낙인이 또다시 희생양을 만들고 말았다. 마약에 대한 혐오를 사람에게 전가해서 위대한 배우의 작품을 매장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무지와 악함에 희생당한 그를 기억하고 애도하고 유가족과 동료를 지키고 위로하고 보듬어야 한다. 그래야만 자살이 번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마약중독 환자에게 어떻게 공감할 수 있어요?” 학생의 마지막 질문이 귓가에 맴돈다. 마음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공감(共感)이다. 공감을 해야 마약중독도 치료할 수 있다. 공감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야 한다. 조롱, 혐오, 비난, 낙인은 모든 것을 악화시킨다. 오직 공감만이 사람을 살린다.
정찬승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사회공헌특임이사
조선일보. 2024년 1월 2일
https://n.news.naver.com/article/023/0003808230?sid=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