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찬승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융학파 분석가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재난정신건강위원회 홍보국장
I. 심리방역의개념
왜 심리방역이 중요한가? 왜 심리방역이 필요한가? 그 이유는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는 감염자와 격리자의 스트레스와 심리적 트라우마를 해결하기 위해서, 둘째는 의료인, 행정 지원팀 등 감염병 대응 관계자의 스트레스를 해결하기 위해서, 셋째는 감염병으로 인해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게 되는 시민 전체를 위해서다.
붕괴 사고, 침몰 사고, 화재 사고 등 제한된 시간과 장소, 그리고 한정된 사람들이 겪는 다른 재난과 달리 감염병은 눈에 보이지 않고 어떤 수단으로든 전염될 수 있다는 특성 때문에 감염병에 직접 노출이 되지 않은 시민들 대다수가 불안과 공포 등 스트레스 반응을 겪을 수 있다.
이로 인해 특히 기존에 정신질환 등 정신건강 문제를 갖고 있던 사람들의 병세가 악화될 수 있다. 공황장애, 우울증, 알코올 의존 등 물질관련장애, 수면장애를 포함한 각종 정신장애가 악화될 수 있으며, 관해 상태에 있던 강박장애 환자가 감염병으로 인한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오염에 대한 강박사고와 행동이 재발하는 경우를 종종 접하게 된다.
별다른 정신건강 문제를 겪지 않던 사람도 감염이 되거나 격리가 되는 경우에 스트레스 반응을 겪고 심한 경우 트라우마 증상을 갖게 되는 경우도 있다. 가족이 감염될까 염려하거나 본인의 건강염려증이 발병하는 사례도 있다.
이런 정신질환에 국한된 좁은 의미의 정신건강 문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사회 전반에서는 감염병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겪은 사람들이 불만과 분노가 끓어 올라 외부의 투사 대상을 찾게 된다. 이런 군중 심리는 특정 개인이나 지역, 집단을 감염병 전파의 원인으로 지목하여 혐오의 감정을 쏟아내는 낙인 현상이 발생한다. 그 대상이 되는 개인 혹은 집단은 사회 구성원의 모든 불안과 분노를 받아내는 희생양이 되고 만다. 군중 심리는 그에 편승한 개인의 정신 수준을 퇴행시켜서 건전한 이성, 합리적인 판단을 마비시키고, 이를 악용한 언론, 인터넷 매체, 각종 유언비어 등 집단의 강력한 암시에 조종당하게 만든다.
유언비어를 포함한 감염병에 대한 잘못된 정보, 성급한 가설은 자아 강도가 약해진 개인의 의식을 사로잡아 사회 전체의 건전성을 저해하고 개인의 정신건강을 후퇴시킬 뿐 아니라, 거짓 치료제에 대한 그릇된 정보로 생명을 앗아가기까지 한다.
감염병에 직접 노출이 되건 안 되건 감염병 판데믹의 시기에는 감염병 자체보다도 심리적인 영향이 훨씬 더 광범위한 영향을 끼치고 스트레스 요인이 되기 때문에 심리방역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심리방역’이라는 용어는 감염병에 대한 재난심리지원을 가리킨다. 심리방역에 대한 필요성의 대두와 심리방역 활동의 본격적인 시작은 2015년에 발생한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사태라고 할 수 있다. 치명률이 높다는 특징과 더불어 발전한 위생 관념, 건강에 대한 관심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온 국민이 큰 불안을 겪게 됐고, 사회 전반에 크나큰 영향을 끼치고 말았다. 이것은 2014년 선행해서 발생한 비극적인 세월호 트라우마의 영향이 관여했을 수 있다.
MERS의 위세가 국민의 정신건강을 위협하던 상황에서 재난정신건강위원회 채정호 위원장은 2015년 6월 17일 KBS1TV 뉴스 라인 프로그램 대담을 통해 대중에게 심리방역을 소개했다. 감염병에 직접 노출이 되건 안 되건 감염병 판데믹의 시기에는 감염병 자체보다도 심리적인 영향이 훨씬 더 광범위한 영향을 끼치고 스트레스 요인이 되기 때문에 재난심리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
2020년 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된 후 재난정신건강 전문가들은 심리방역의 중요성을 본격적으로 널리 보급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전문가 교육, 정책 수립, 시민 홍보 등을 위해 심리방역을 정의할 필요가 대두됐다. 정찬승은 ‘심리방역이란 감염병으로 인한 마음의 고통을 예방하고 치유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II. MERS, 감염병스트레스정신건강지침의핵심도출
MERS 국내 유입이 확인되고 감염자들이 발생하여 시민들의 불안이 시작될 때 정찬승은 재난정신건강위원회에서 감염병 정신건강지침 제작을 제안했다. 당시에 다소 이른 감이 있었으나, 집단적 불안의 특성상 단시일에 기하급수적으로 치솟는 불안, 공포의 심리는 오히려 선제적으로 정신건강지침을 제작한 것이 다행으로 여겨질 정도였다.
재난정신건강위원회는 세월호 침몰 사고 시 시민들을 위한 정신건강지침 제작 배포 작업을 한 경험을 바탕으로 감염병 정신건강지침 제작에 착수했다. 당시 감염병 정신건강지침은 세계적으로도 그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자료가 희박했다.
정찬승과 박한선이 주도하여 제작한 ‘감염병 스트레스에 대한 정신건강지침’은 재난정신건강위원회 내부 회람을 통해 수정 보완되었다(그림1). 감염병 발생 시 정신건강에 가장 중요한 주제는 여섯 가지로 정리된다. 잘못된 정보, 스트레스 반응에 대한 혼란, 감정의 억압, 자기 관리의 소홀, 취약 계층 소외, 혐오와 낙인 등이다. 가이드라인에서는 이 주제에 대해 시민들에게 올바른 정보 습득, 정상적 스트레스 반응 이해, 감정 인정과 표현, 건강한 자기 관리, 취약 계층 지원과 관심, 낙인 방지와 이타심 등 여섯 가지 항목으로 제시했다. 재난정신건강위원회와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재난특임위원회가 공동으로 지침을 발표했다. 당시 SNS에서 유행하던 카드뉴스 형식을 심리방역 홍보에 최초로 도입했다.
그림1. 감염병 스트레스에 대한 정신건강지침
III. 재난정신건강정보센터구축
MERS 사태를 거치면서 시민들의 불안과 공포, 무력감, 집단적인 피암시성 등 재난이 불러온 집단 의식의 저해에 대해 재난 시 정신건강지침의 필요성에 대해서 실감하게 됐다. MERS 사태가 지나가면서 정신의학 분야를 포함한 다학제 다직역 연구팀이 보건복지부 정신건강기술개발사업단으로부터 의뢰받아 ‘재난 유형과 개입시기에 따른 재난정신건강지원서비스 모형 및 업무수행전략 개발’ 연구과제를 시작했다. 이명수가 총괄 연구책임자로, 2015년부터 2019년까지 4년에 걸쳐서 재난정신건강 분야를 획기적으로 발전시키는 프로젝트다. 그중 필자는 ‘재난정신건강지원 정보콘텐츠 및 플랫폼 개발’을 맡은 3세부에 참여했다.
3세부가 하는 일은 최선의 재난정신건강 정보를 제작하여 시민들에게 직접 전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작업은 인터넷에 재난정신건강정보센터를 구축하여 누구라도 최상의 정보를 자유롭고 편리하게 이용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재난정신건강에 대한 큰 개념들을 알기 쉽게 정리하여 공급하고, 큰 구조로써 재난 전, 중, 후기 각 3단계로 구분하여 장차 닥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재난을 망라해 각 재난에 대한 정신건강지침과 도움 자료를 만들어 제공하는 플랫폼이다.
재난정신건강정보센터는 세계에 내놓아도 돋보일만한 내용들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이 작업의 의의는 내부에 담긴 정보만이 아니라, 그 구조에 있다. 시민들에게 어떤 정보를 어떻게, 언제 제공할지에 대한 파이프라인이 구축된 것이다. 이를 통해 예상치 못하게 갑작스레 닥친 재난에도 이 센터의 정보구조를 따라 가이드라인을 작성해서 제공할 수 있게 됐다. 예를 들어 2017년 포항 지진 발생으로 시민들이 크게 동요했을 때 재난정신건강정보센터의 정보 구조와 자료들을 이용해서 각종 일반적인 재난정신건강 지침과 함께 ‘지진 발생 시 마음건강지침’을 신속하고 유용하게 만들어 현장에 전달할 수 있었다. 이렇게 작성된 자료는 현장에 투입된 상담가와 시민들에게 큰 호응을 받고 매우 적극적으로 활용됐다.
시민에 대한 직접적인 심리지원과 일선 상담가 교육에 훌륭히 활용된 재난정신건강정보센터는 2019년까지 4년 동안 총 665건의 콘텐츠를 개발했고, 최종적으로 세계 최초로 재난 대비 마음건강 지침을 내놓았다. 연구 종료 후에는 국가트라우마센터로 자료와 관리를 이관하여 현재 심리방역을 포함한 재난정신건강지원에 활용되고 있다.
IV. 코로나19 유입직후심리지원
2019년 12월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서 최초 발생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는 이후 중국과 전 세계로 확산됐다. 세계보건기구는 2020년 1월 30일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선포했고, 3월 11일 코로나19에 대해 판데믹을 선포했다. 한국의 코로나19 발생 상황을 보면, 2020년 1월 20일 한국을 방문한 중국인이 최초 감염자로 확진됐다. 정부는 1월 27일 코로나19 위기경보 수준을 주의에서 경계로 격상하고 중앙사고수습본부를 설치했으며, 1월 30일, 31일, 2월 11일 세 차례에 걸쳐 전세기를 투입하여 우한 교민을 국내로 이송했다.
우한으로부터 이송된 귀국자들의 격리시설에는 국가트라우마센터, 국립정신의료기관 4개소 등이 통합심리지원단을 구성하여 격리자들의 심리지원을 펼쳤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재난정신건강위원회는 심리지원을 위한 오디오, 비디오 파일을 제작하여 통합심리지원단에 제공했다. 채정호, 백종우, 정찬승 등이 참여한 심리지원 자료는 2월 6일부터 격리시설에서 방송으로 송출되어 격리자들의 정신건강을 돌보는 데 기여했다. 특히 기존 MERS 사태에서 이미 제작되어 재난정신건강정보센터를 통해 다듬어진 ‘감염병 유행시 마음건강지침’을 개선하여 적시 적소에 활용할 수 있었다. 이 지침은 일반인, 아이를 돌보는 어른, 격리자를 대상으로 했기에 즉각 방송용으로 녹음을 제작해서 격리시설에서 방송했다.
V. 마음건강지침내용과형식의단계
재난정신건강정보센터까지 구축하면서 지침 제작과 시민 교육, 홍보 작업에 참여하는 가운데, 최근에 관심이 높아진 재난과 트라우마에 대해 많은 자료들이 만들어지고 여러 전문가들이 적극적으로 이를 활용하여 각종 매체를 통해 전달하는 상황에 대해서 어떤 분류를 하고 체계를 정리해둘 필요가 생겼다.
재난정신건강지침에 공통적으로 포함할 요소는 6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재난심리의 일반적 특징(재난 후 심리적 반응, 비정상적인 상황에 대한 정상적 반응 등), 개별 재난의 특이성, 회복 방법(일상 회복, 자신 돌보기, 이웃 돌보기, 안정화 기법 등), 주의사항(술, 해로운 약물 사용 금지, 언론 노출 조절, 공신력 있는 정보 이용 등),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 취약 계층(임산부, 어린이, 노인, 장애인 등)의 지원 등이다.
시민들에게 제공하는 재난정신건강정보는 크게 4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제1단계로서 핵심 지침을 제작하고, 2단계에서 접근성을 강화해 쉬운 형태로 보급한다. 3단계에서는 지침의 형식적인 틀에서 벗어나서 대중이 알고 싶은 내용을 언론과 홍보 매체를 활용해 직접 전달한다. 마지막 4단계에서는 충분히 확산된 건전한 재난정신건강정보를 이용해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마음건강에 대한 콘텐츠를 만들고 공유하는 것이다.
1단계: 핵심 지침 제작
제1단계부터 살펴보면, 가장 기초가 되고 가장 중요한 핵심 지침을 제작하는 것이다. 전문가가 주체가 되어 전문적 내용을 전문적 형식으로 만들고, 배포 대상은 전문가, 보건당국, 국제기구, 학회, 기관, 단체, 언론, 시민 등이 된다. 시민을 위한 핵심 지침의 주된 배포 대상이 특히 전문가인 이유는 다수의 전문가들이 지침 내용을 숙지해야 올바른 지식과 방향으로 시민들을 도울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영어 번역본을 가급적 제작해야 한다. 국가트라우마센터가 설립되는 등 우리나라는 이제 재난정신건강에 있어서 급속한 성장을 이루고 풍부한 지식과 경험을 축적했다. 이런 노하우를 이제 전 세계 각국과 공유하고 열악한 국가를 위해 도움을 주어야 한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MERS 대응을 위해 제작한 정신건강지침을 기반으로 하여 국민을 위한 ‘코로나19 심리방역을 위한 마음건강지침(그림2)’과 ‘코로나19 심리방역을 위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지침서(그림3)’를 제작했다.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에서는 ‘감염병 심리사회방역지침’을 만들고 영문으로 번역하여 전세계 재난정신건강전문가와 학회, 정부, 기관들에 배포했고, 엄청난 찬사를 받았다. 이 작업은 국가트라우마센터에서 더욱 다듬어 ‘감염병 심리사회방역지침 – 현장용’으로 발전했다.
그림 2. 코로나19 심리방역을 위한 마음건강지침
그림3. 코로나19 심리방역을 위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지침서
2단계: 접근성 강화한 쉬운 지침 보급
이런 필수적, 핵심적인 기본 지침은 그 형식에 있어서 시민들이 직접 이용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제2단계로 접근성을 강화한 쉬운 지침이 필요하다. 물론 이것은 1단계의 핵심 지침을 바탕으로 하여 전문적인 내용을 대중적인 형식으로, 카드 뉴스, 웹툰, 지침 요약본, 다언어 번역판 등으로 제작하는 것이다. 홈페이지, 이메일, SNS(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 등을 이용해서 전문가, 준전문가, 전공자, 당사자, 시민들, 언론 모두 관심을 갖고 이용할 수 있는 친근한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에서 제작한 마음건강지침은 보건복지부와 국가트라우마센터와 협력하여 시민들에게까지 제공할 카드뉴스로 만들어졌다(그림1). 보건복지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통합심리지원단은 ‘감염병 스트레스 마음돌봄 안내서’를 만들었고, 이를 영어, 중국어, 베트남어, 태국어 등 다언어로 번역했다. 앞서 강조했듯 우수한 우리의 자료를 전 세계로 배포하는 것은 물론이요, 국내에 있는 한국어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는 도움을 받기 어려운, 눈에 잘 띄지 않는 한 사람을 돕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어서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재난과 트라우마 위원회에서는 어린이와 청소년이 직접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지침을 제작했다. 창의적이고 유머러스한 이 지침에는 제작을 주도한 김은지 위원장의 놀라운 공감 능력이 담겨있다. 이런 공감하는 태도가 지침을 더욱 유용하게 만들어준다.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에서는 감염병 심리사회방역지침의 주요 내용들을 카드 뉴스로 만들었고, 특히 세계 최초로 웹툰 작가와 협업하여 웹툰 형식을 도입했다. 정운선이 대본을 쓴 ‘지금이 아주 좋은 때입니다’는 코로나19로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는 중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어서 폭발적인 조회수를 기록하며 널리 공유되어 읽혔다. 김은지의 ‘힘들지만 괜찮습니다’도 트라우마 치유의 이론을 매우 따뜻하고 쉬운 스토리로 담아낸 수작이며, 영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로 보급됐다. 조인희의 ‘톡가사리’는 인포데믹(infodemic)에 대한 놀라운 통찰과 해학이 담긴 흥미진진한 스토리다.
감염병 중기인 최근에는 보건복지부, 대한신경정신의학회,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 한국심리학회가 공동으로 ‘코로나19와 함께하는 마음건강 지키는 7가지 수칙’을 제작하고 배포했다(그림4).
그림4. 코로나19와 함께하는 마음건강 지키는 7가지 수칙
3단계: 언론, 홍보 매체 활용
2단계에서 이미 충분히 시민들이 이용할만한 쉬운 형태가 제작됐지만, 이것은 관심을 가진 시민들만 읽는다는 제한점이 있다. 제3단계에서는 언론, 홍보 매체를 적극 활용하며, 지침이라는 틀을 넘어서 시민이 관심 있는 주제에 대해 인터뷰, 칼럼, 영상 등을 통해 불특정 다수 시민에게 직접 전달하는 재난정신건강 정보를 제공한다.
재난정신건강위원회 초대 위원장이자 2015년 MERS 사태부터 심리방역의 중요성을 설파한 채정호는 칼럼 기고와 인터뷰를 통해 회복을 위한 올바른 방향을 제시했다. 재난정신건강위원회 위원장 백종우는 많은 신문 칼럼과 방송 대담을 통해 시민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백명재는 방역 최전선인 경기도 선별진료소 현장에서 인터뷰를 하며 심리사회방역지침을 소개했다. 국가트라우마센터 심민영은 중추적 책임과 역할을 감당하여 국민이 반드시 알아야 할 내용들을 신문 칼럼과 인터뷰를 통해 전달했다. 국가트라우마센터 이정현은 신문 대담과 보건복지부 생방송을 통해서 감염병 중기의 심리방역에 대해 시민의 눈높이에 맞추어 친숙하고 공감 가득한 내용을 전했다. 정찬승은 코로나19 국내 유입 초기에 심리방역의 정의를 소개하고, 인포데믹에 대한 신문 칼럼과 국민정신건강실태조사 결과에 대한 대담을 했다. 서울시 COVID-19 심리지원단장 김현수는 시민들이 가장 잘 이용할 수 있는 세바시 시리즈와 협력해서 ‘심리적 백신’이라는 참신한 대중 강연을 해서 많은 시민들에게 큰 도움이 됐다. 김은지는 ‘외상 후 성장’에 대한 감동적인 강연으로 큰 화제를 모았다.
감염병 중기에 시민들의 무력감이 커질 무렵, 추석을 앞두고 서울시 COVID-19 심리지원단은 그동안 쉼 없이 성실하게 제작한 많은 콘텐츠를 ‘심리안정 선물세트’라는 모음으로 엮어서 많은 전문가와 시민에게 큰 기쁨과 위로를 주었다. 보건복지부 국립정신건강센터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서 정확하고 친숙한 영상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보급하고 있다.
이 모든 작업을 통해 보듯이 이제 우리나라는 심리방역의 선진국이다. 재난정신건강위원회에 참여하는 위원들은 감염병 심리지원의 한복판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 개념을 세우고 연구와 임상진료, 대국민 교육과 홍보의 최전선에서 활약하고 있다(그림5). 더욱 중요한 사실은 대중 친화적인 수많은 콘텐츠들이 제1단계의 핵심 지침, 즉 전문가들의 연구, 체험, 토론, 합의를 거친 기본 지침으로부터 출발했다는 것이다.
그림5. 대한신경정신의학회 회원들의 대국민 심리방역 홍보 활동
4단계: 시민 참여
마지막으로 제4단계는 시민들이 직접 제작하는 마음건강 자료다. 시민 스스로 정신건강에 대한 높은 관심으로 자료를 만들고 공유한다. 건전한 시민 정신으로 리질리언스를 함양하는 가장 바람직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도 1단계의 핵심 지침은 매우 중요하다. 시민들이 주체가 되어 여러 콘텐츠를 만들 때 재난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잘못된 정보가 파고들어 부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거나 심지어 해를 끼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재난 발생 시 전문가들이 신속하게 기본 지침을 정리해서 보급하는 것은 이런 시민 활동까지 고려해야 한다.
VI. 대국민마음건강지침에담긴마음
대국민 마음건강지침 작업에 여러 차례 참여하면서, 점차 지침을 정리하는 기본 태도가 달라지게 됐다. 가장 중요한 점은 지침에 담을 내용은 지시가 아니라 공감이라는 것이다. 재난은 그 당사자나 집단이 감당하기 힘든 충격이다. 공감을 바탕에 두고 대상자에게는 가장 중요한 안내를 해주는 정도로 충분하다. 지침의 대상이 되는 사람에게 할 일을 지시하기보다는 대상자를 위해서 우리 모두가 할 일에 대한 지침이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감염병 마음건강지침의 중심은 질병이 아니라 사람이어야 한다. 현재 정책과 사회 현상을 보면 우리 사회의 핵심이 마치 코로나19인 것처럼 보인다. 인간은 질병의 고통 속에서도 놀라우리만치 건강한 측면, 빛나는 창조성과 치유의 힘을 갖고 있다. 지나치게 병리적인 현상에 집착하다 보면 건강한 부분이 소외되고 인간을 무력화시키고 만다. 따라서 지침은 질병 중심이 아닌 인간 중심이어야 한다(그림6). 마음건강지침이 담은 궁극적인 의도는 ‘고통받는 한 사람을 온 세상이 힘을 합해 돕는 마음’이기 때문이다.
그림6. 사람 중심의 심리방역
VII. 사람중심의심리방역
코로나 블루, 코로나 레드, 코로나 블랙이라는 신조어는 코로나19로 인한 우울, 분노, 절망을 표현한다. 정부와 언론, 전문가들까지 나서서 파랑, 빨강, 검정으로 코로나 시대의 정신건강을 물들이고 있다. 과연 우리의 정신건강은 우울과 분노, 절망으로 뒤덮여 있을까?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는 3월, 5월, 9월 세 차례에 걸쳐 코로나19가 국민의 정신건강에 끼친 영향을 조사해 왔다. 10월 16일 보건복지부와 함께 발표한 제3차 코로나19 국민정신건강실태조사 결과는 코로나 스트레스의 영향을 여실히 보여준다. 걱정과 두려움, 불안, 우울이 3월과 5월에 시행한 조사에 비해서 모두 악화됐다.
전체 응답자 중 22.1%가 우울 위험군에 해당하고, 특히 여성의 경우 26.2%가 우울 위험군인 것으로 나타났다. 자살을 생각한 사람도 13.8%나 된다. 2018년에 일반 성인 중 자살을 생각한 사람의 비율이 4.7%였음을 고려할 때 엄청나게 늘어난 수치다.
젊은이의 정신건강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전체 조사 대상자 중 20대와 30대의 우울과 불안이 가장 높았으며,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악화되고 있다. 20대 청년 중 자살을 생각한 사람은 19.9%에 달한다.
참담한 수준으로 보이는 결과에서도 우리는 가능성을 찾아야 한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울증의 증상이라고 열거된 항목 중에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것이 ‘피로감’과 ‘흥미와 즐거움의 상실’이다. 이것은 우울증의 증상일 수도 있지만, 정상적인 스트레스 반응이기도 하다. 요즘 시대에 우울증에 걸리지 않더라도 누군들 피곤하지 않고 재미없지 않겠는가.
우리에게는 집단의 병적 문제에만 집중하는 편협한 병리적 인간관이 아니라 개인의 다양한 면모와 건강한 가능성을 존중하는 전인적인 인간관이 필요하다. ‘코로나 블루 대책’이라는 제목의 보건정책은 자칫 국민 대다수가 우울하고 불안하다는 암시를 주어 불필요한 걱정을 만들어낼 수 있다. 고통이 심한 사람들을 간과해서도 안 되지만, 그저 피곤하고 재미가 없어진 다수의 사람들까지 획일적인 우울과 절망으로 색칠해서 환자로 취급하여 치유와 위로를 받으라고 강요해서는 안 된다. 질병 중심의 대책이 아니라 인간 중심의 대책이 필요하다.
평소라면 정신건강 문제를 가진 환자를 위한 집중적인 지원으로 충분하겠지만, 코로나19처럼 전 국민이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서는 보통 사람을 위한 지원 또한 중요하다. 소외되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집중적으로 돕는 한편, 시민들의 건강한 부분을 키워나가는 다면적 전략이 효과적이다. 심각한 우울과 불안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심리치료와 자살 예방 대책과 더불어 피로와 지루함을 호소하는 평범한 어른과 아이들을 위한 활력 충전이 필요한 것이다.
색채의 상징은 결코 단순하지 않고 풍부하고 무한하다. 우울의 블루, 분노의 레드, 절망의 블랙을 넘어서 희망의 블루, 정열의 레드, 미지의 블랙을 보라. 우리는 코로나19가 가져온 앞이 보이지 않는 암흑기를 살아가고 있다. 이전의 삶과는 다른, 알 수 없는 미래를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푸른 희망과 붉은 정열을 품고 미지의 검은 바다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글 정찬승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융학파 분석가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재난정신건강위원회 홍보국장
마음드림의원 원장
대한신경정신의학회 2020년 추계학술대회(2020년 10월 30일(금)~31일(토)에 인터불고호텔 대구) 심포지엄 ‘COVID-19 팬데믹과 심리방역’에서 ‘심리방역 및 대국민 마음건강지침’ 제하로 강연한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한 원고입니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뉴스레터 ‘신경정신의학’ 2020년 12월호에 ‘COVID-19 판데믹 시대 심리방역 활동과 마음건강지침 보급’ 제목으로 게재한 글입니다.
http://www.knpanews.or.kr/news/articleView.html?idxno=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