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정신분석 에세이 ‘治癒(치유)의 나무’

내 진료실 한쪽에는 커다란 나무가 자라고 있다. 크고 튼튼한 둥치에 쭉쭉 뻗은 굵은 가지들, 무성한 잎사귀들을 보면 저절로 힘이 솟는다. 나에게 정신분석을 받은 한 여성이 선물한 생명력이 넘치는 나무다.
그녀가 처음 나를 찾아온 것은 어느 해 가을이었다. 그녀는 초점을 잃은 눈동자로 병원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며 도무지 가만히 앉아 있지를 못했다. 그녀의 가느다란 손목과 영혼은 상처투성이였다. 싱그러운 젊음으로 빛을 발해야 할 얼굴은 술과 절망에 시들어 있었다. 그녀는 자신에 대해 말하려고 하지 않았다. 왜 그런 극단적인 행동을 했는지, 어떤 충동적인 감정에 휩싸인 것인지,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어느 것도 말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저 진료실 테이블에 반쯤 기대어 헝클어진 머리를 두 손에 묻고 공허하게 웃을 뿐이었다. 그녀의 자아(自我)는 허공을 부유하며 헤매고 있었다. [더 읽기]

치매 노인의 꿈 분석

한 달에 한 번 내 진료실에 찾아오는 할머니가 있다. 할머니의 모습은 세계적인 멋쟁이였던 젊은 시절 그대로다. 윤기가 흐르는 멋진 밍크코트에 손가락마다 반지가 빛난다. 머리단장이며 화장이 정말이지 근사하다. 처음 만나는 사람은 누구도 그녀가 치매를 앓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한다. 심지어는 자녀들도 머리를 갸우뚱할 때가 있다. 할머니는 노인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는 동안에도 주변의 몸이 불편한 환자들을 도우며 말벗이 되어주었다.

하지만, 할머니는 치매 환자가 틀림없다. 몇 달 동안의 입원 치료를 마치고 퇴원한 후 일주일 만에 진료실에 들어온 그녀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물었다. “누구시더라…?” 한 달에 한 번씩 외래에 올 때마다 묻는다. “정형외과 선생님이죠?” 또는, “재활의학과 선생님이죠?” 한참 대화를 나누다 보면 문득 생각이 난 듯 반가워할 때도 있다. [더 읽기]

나의 분석심리학 입문기

의과대학 시절 처음 분석심리학 이론을 접할 때는 그리 큰 흥미를 갖지 못했다. 하지만, 병원 실습 기간 중에 분석심리학회의 주최로 서울아산병원에서 열린 기초강좌에 참석하여 큰 충격을 받았다. 특히 이부영 선생님과 이죽내 선생님의 강의가 지금도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어떤 충격이었을까? 이전에는 들어보지 못한 인간의 정신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이 있었다. 내가 어렴풋이 느껴오던 무언가와 일치되는 느낌이 들었다. 정체되어 있던 마음이 활력을 얻게 되었고, 분석심리학에 대한 매력을 느꼈다. 이 모든 느낌은 젊은 시절의 회상이지만, 그 당시의 지적 흥분과 고양된 감정의 경험만큼은 지금도 확실히 남아 있다. 게다가 정신과 실습이 시작되고 보니 당시 주임교수로 계시던 연병길 선생님께서 분석심리학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지고 제자들을 가르치고 계셨다. 마음의 구조를 멋진 그림으로 그려서 알려주시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당시에는 ‘정신과 의사라면 분석심리학은 기본으로 알고 있구나.’ 하는 오해까지 하게 되었다. [더 읽기]

속죄하는 아이 – 학교 폭력에 대처하는 어른의 태도

맑은 가을날 예의 바른 엄마와 앳된 딸이 찾아왔다. 보통은 아이를 먼저 만나는 것이 원칙이지만, 엄마는 꼭 미리 알려드릴 것이 있다며 먼저 나와 얘기하기를 청했다. 좋은 교육을 받고 바른 분별력을 가진 엄마는 조심스레 그 ‘사건’을 들려주었다.
초등학교 5학년 가영이와 나영이는 같은 반 친구들과 깔깔거리며 놀고 있었다. 나영이가 친구의 치맛자락이 말려 올라갔다며 놀리자, 가영이는 남자애들도 있는데 그런 얘기를 한다며 나영이의 어깨를 때렸다.
며칠 후 학교에서 가영이와 나영이의 부모가 선생님 앞에서 만났다. [더 읽기]

공부하는 즐거움 (국제학술대회 참석후기)

2014년 4월 16일에 발생한 세월호 침몰 사고로 우리나라 국민은 물론이고 세계 각국에서 슬픔과 애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을 포함하여 수많은 정신건강 전문가들이 일선으로 달려가서 감당하기 힘든 압도적인 심리적 트라우마의 치유에 힘을 썼다. 특히 융학파의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은 재난에 대한 심리적 대응의 정책 수립과 현장 지원, 피해자와 유가족에 대한 상담에 자원하여 재난의 현장을 직접 체험했다. 그 과정에서 피해자와 유가족, 일반인, 그리고 치료자들까지 의식과 무의식에 깊은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트라우마 자체의 해결에 더하여 무의식의 콤플렉스의 작용을 연구해야 할 필요성을 절감했다. [더 읽기]

세계보건기구 서태평양지부 전문가그룹회의 참석을 마치고

이른 아침부터 회의실에 모여 각국의 재난 경험과 교훈들을 종합하고 심리적 응급처치를 포함한 재난심리지원 도구들을 리뷰했다. 전날 의견이 취합된 세계 인도주의 정상회의에 올릴 제안문을 최종 검토했는데, 이때 나는 ‘좋은 기술과 도구를 개발하자’는 것으로 그치지 말고 ‘개발하고 보급하자’는 것으로 수정하여 각국에서 개발 중인 재난심리지원 도구와 방법론들을 적극적으로 공유할 것을  제안했고, 모든 참석자들의 공감과 동의를 얻어낸 것이 큰 성과였다. [더 읽기]

트라우마 회복을 위한 발걸음

열차가 후쿠시마 역에 도착하자 일행의 얼굴에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시내 주요 지역에 세워진 방사능 측정기의 전광판에는 방사능 수치가 붉은색으로 선명하게 표시되어 있었다. 후쿠시마 현립 의과대학 병원에 설치된 후쿠시마 마음의 케어 센터에서 만난 센터장 마에다 교수는 지진과 쓰나미에 이어 원자력발전소의 사고가 터진 후 가장 큰 문제는 사람들의 불신이라고 했다. 시민들은 정부에서 발표하는 피해 상황과 대책을 믿지 못하고, 도움을 주러 온 센터의 직원들에게 의혹의 눈길을 던지며 멀리했다. 원전사고가 나자 멀리 떨어진 지역으로 피신 갔다가 다시 마을로 돌아온 이웃을 따돌리는 일도 일어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난정신건강센터에서는 수십 명의 직원이 쉴 틈 없이 일하고 있었다. 각 지역 피해자들의 상태를 파악하고 현장지원을 나가고 자료를 정리하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이렇게 5년을 달려온 것이다. 예로부터 아름다운 자연과 신선한 농수산물, 온천이 유명한 후쿠시마에는 재난이 휩쓸고 간 후 상처와 불신, 피로감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더 읽기]

내향형 의사의 세계 참여

… 세계에 참여하지 않고 닫힌 공간 안에 오래 머물다 보면 작은 방 안의 현자(賢者) 노릇에 도취할 수 있다. 불편하고 낯설어도 현실의 사람들과 섞이고 영향을 주고받는 것은 내향적 인간에게 현실적인 균형감을 찾아준다. 클리닉 밖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연구, 교육, 봉사의 세계 참여는 다시 내 진료실 안으로 돌아와서 나와 마주 앉은 한 개인을 넓고 깊게 공감하는 데 큰 바탕을 제공해준다. 나는 이런 외적 활동들을 행함에 있어서 교수, 봉직의, 개업의로 직역을 구분하는 것은 이제 무의미하다고 본다. 내 페르조나는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이자 융학파 분석가이며, 이 모든 세계 참여 활동은 나의 의업(醫業)을 심화, 확장시키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카를 구스타프 융은 철저히 자기 자신이 될 것을 강조하면서도 이것은 사회로부터 분리되거나 고립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온전한 인격을 가진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더욱 훌륭히 참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독립된 개별적 존재이면서도 서로 연결된 집단의 일원이다. 내적 세계와 외적 세계 어느 쪽도 소홀히 할 수 없다. 우리는 그 양쪽을 가진 전체로서의 인간이기 때문이다. [더 읽기]

우리 안의 갑과 을 – ‘갑질’의 심층심리학적 이해

갑질은 기본적으로 독재자나 폭군과 같은 권력의 오남용이다. 권력의 우위에 있는 자는 당연히 이런 갑질을 해도 된다고 생각하고, 열세에 있는 자는 자신이 당해야만 할 뿐 다른 방법은 없다는 무력감에 젖어 있다. 여기에는 지위고하에 대한 뿌리 깊은 계급의식이 내재해 있다. 집단이 구분하는 계급만 보일 뿐 각각의 개인의 고유한 존재는 보이지 않는다.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는 평등의식이 결여되었을 때 갑질이 나온다. [더 읽기]

A Jungian Encounters Disaster

When the Sewol Ferry disaster occurred, I became aware of the seriousness and urgency of the situation only after the network of contacts by the Korean NeuroPsychiatric Association’s Public Relations and Planning Committee was activated.

While preparing and reviewing the announcements and press releases by the Association, I was requested to arrange what the Association needs to do to deal with the tragedy. I prepared and circulated a proposal titled “Proposal of a Disaster Mental Health Committee” after urgently gathering information and researching the mental health system in developed countries in response to disasters. After consultation with experienced doctors and meetings within the Association, the Disaster Mental Health Committee was established as a committee under the Korean Mental Health Foundation. [read more]